
보유세 과세 기준을 주택 수에서 보유 주택의 합산 가액 기준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제언이 나왔다. 현행 주택 수 중심의 과세 체계가 이른바 ‘똘똘한 한 채’ 선호를 부추겨 과세 형평성을 저해하고 집값 상승을 자극한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보유세 부담을 어느 수준까지 높일지를 두고는 의견이 엇갈렸다. 시장 충격을 고려해 점진적으로 인상해야 한다는 신중론과 부동산 투기 수요를 억제하려면 실효세율을 적극적으로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맞섰다.
재정경제부는 16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부동산 세제 국민 의견 경청 토론회’를 열고 보유세와 양도소득세 개편 방향을 논의했다. 실거주자 보호와 과세 형평성 제고, 부동산 거래 정상화 등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이날 토론회에는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비롯해 학계 전문가와 시민단체·금융업계 관계자, 일반 시민 등이 참석했다.
“주택 수보다 가액”…“1주택 혜택이 똘똘한 한 채 부추겨”
전문가들은 보유세를 주택 수보다 보유 주택의 합산 가액을 기준으로 부과해야 한다는 데 대체로 공감했다. 같은 가격의 주택을 보유하고도 주택 수에 따라 세 부담이 달라지는 현행 제도가 수도권 고가주택 한 채로 수요를 몰리게 한다는 지적이다.
오종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조세연구본부장은 “과세 기준은 주택 수보다는 주택 가액을 기준으로 하는 게 형평성에 더 맞다”며 “주택 가액을 기준으로 누진 과세하면 초고가 1주택 문제도 그 안에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 본부장은 현행 주택 수를 기준으로 하는 과세 기준이 ‘똘똘한 한 채’ 현상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는 “선호 지역에 주택 수요가 몰리고 주택 가격이 급등하면 다시 그 지역을 선호하게 된다”며 “주택을 과세할 때 거주 주택과 투자 주택을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도 “동일한 공시가격 합계액이라도 주택 수에 따라 세액이 달라지는 구조”라며 “주택 수가 아니라 공시가격 크기에 따라 종부세를 부과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밝혔다.
함 랩장은 “공시가격은 같지만 주택 수에 따라 종부세가 2.1배 정도 차이가 난다”며 “지방의 여러 채보다 수도권의 똘똘한 한 채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기업 토지+자유 연구소도 “비싼 집 한 채를 오래 보유할수록 세금을 낮춰주니 똘똘한 한 채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라며 “거주 여부와 상관없이 1주택 종부세 혜택을 축소하고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정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토지주택위원장 역시 “한 채만 가져라, 거기에 살아라 하는 정책 기조로 강남과 한강벨트 중심의 특정 지역 아파트 가격 상승이 심화됐다”며 “똘똘한 한 채 현상을 키우지 않는 보편적인 방향으로 세제를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급격한 인상은 임대료 전가” vs “보유세가 투기 기대수익 낮춰야”
보유세 과세 기준을 가액 중심으로 바꾸자는 데는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세 부담을 얼마나 높일지를 두고는 의견이 갈렸다.
함영진 랩장은 보유세 강화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시장 수용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동산 과세가 시장의 수용성을 넘어 급격히 강화되면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매물 잠김과 거래량 감소, 시장 경직, 전월세 매물 부족에 따른 임대료 전가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부동산 세제 개편에서는 보유세의 제한적인 인상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재산세 60%, 종부세 80% 수준으로 높이는 방안을 제시했다.
진창하 한양대 교수도 국내 보유세 부담이 국제적으로 낮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진 교수는 “국내총생산 대비 보유세를 보면 한국은 OECD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 아니다”라며 “거래세는 OECD 회원국 가운데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택가격 문제를 세제보다 수도권 공급 부족과 지역 불균형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 교수는 “서울은 인구 1000명당 주택 수가 418호, 수도권은 407호에 불과하다”며 “지역균형발전과 함께 공급을 병행해 숨통을 터주는 것이 주택가격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반면 남기업 소장은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까지 점진적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부동산 투기가 노리는 불로소득이 잘생기지 않도록 세제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보유세 강화가 부동산 기대수익률을 낮추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나라 보유세 실효세율은 주요 선진국의 3분의 1에서 5분의 1 수준”이라며 “장기적으로 선진국 수준으로 보유세를 강화하는 것을 징벌적 과세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윤상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도 “보유세는 경제학적으로 상당히 효율적인 세금”이라며 “매년 주택의 가치를 재평가해 자산 배분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문 연구위원은 “보유세가 높은 나라일수록 주택가격 변동성이 낮은 경향을 보인다”며 “우리나라도 재산세를 기반으로 보유세 중심의 부동산 세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광수 광수네복덕방 대표는 보유세가 시장을 교정하는 기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세금은 시장을 좋은 쪽으로 움직이는 교정 과세 역할을 해야 한다”며 “보유세는 세금을 걷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 부동산시장을 얼마나 안정시키느냐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종부세가 시장의 교정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은 세율이 낮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라며 “교정 과세 역할을 하려면 세율을 높이고 정책에 대한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기보유 아닌 실거주 공제”…초고가 주택 기준은 40억·50억 거론
장기보유자를 대상으로 최대 80%까지 적용되는 1주택 종합부동산세 공제를 손질해야 한다는 의견도 이어졌다.
함영진 랩장은 “종부세 세액공제는 1세대 1주택자가 최대 80%까지 적용받을 수 있다”며 “보유 공제를 거주 공제로 바꾸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실거주자에게 종부세 공제율을 적용해야 장기적으로 보유와 거주를 병행하게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심충진 건국대 교수도 “현행 제도는 연령과 보유 기간에 따라 최대 80%를 공제하고 있다”며 “종부세 본연의 기능을 강화하려면 공제 제도를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심 교수는 장기보유 공제를 실거주 기간에 따른 공제로 바꾸는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했다. 그는 “5년 이상 거주하면 10%를 공제하고, 이후 거주 기간이 5년 늘어날 때마다 공제율을 10%포인트씩 가산해 20년 이상 거주하면 최대 40%를 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고령자 공제까지 합한 최대 공제율은 현행 80%에서 60%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윤상 연구위원은 공제보다 납부 유예 방식이 적절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같은 주택에 사는 사람이 고령층이거나 더 오래 보유했다는 이유로 세금을 적게 내는 것은 조세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며 “세금을 깎아주기보다 주택을 팔거나 상속할 때까지 납부를 유예하는 방식이 낫다”고 말했다.
초고가 주택의 기준과 과세 방식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심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시가 50억원, 공시가격으로 약 35억원 이상인 고가주택은 종부세 공제율을 10%포인트씩 차감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광수 대표는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면서도 시가 40억원 이상 주택을 대상으로 실효세율을 높이는 방안을 예로 들었다. 이 대표는 “전체 주택의 보유세를 올리면 정권이 바뀔 때 다시 낮추려 할 가능성이 크다”며 “40억원 이상 아파트에 대해서만 실효세율을 높이면 소수의 초고가 주택 소유자를 위해 법을 다시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초고가 아파트는 투자 목적으로 보유한 비중이 높다”며 “실효세율이 올라가면 매물이 나오고 시장의 선순환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진창하 교수는 특정 가격을 일률적인 기준으로 정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초고가 주택을 어떤 금액으로 딱 정하기보다 상위 0.1% 주택 가격이 어느 정도인지, 국제적으로 어느 수준을 초고가로 보는지 살펴봐야 한다”며 “주택 가격 분포와 지역별 특성을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