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4일 (2)
‘봉제공장’에서 브랜드 산업으로…K패션의 진화 [K의 시간①]

‘봉제공장’에서 브랜드 산업으로…K패션의 진화 [K의 시간①]

OEM 생산기지에서 글로벌 브랜드 산업으로 전환
생산·플랫폼·콘텐츠가 만든 K-패션 성장 공식
“세계 시장 향한 K패션, 새로운 도약 기회”

승인 2026-07-08 06:00:03 수정 2026-07-08 11:2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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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제공장’에서 브랜드 산업으로…K패션의 진화 [K의 시간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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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기사 읽기 정보
분량 약 4분
취재방법 현장취재, 전문가 인터뷰
주제 'K패션은 어떻게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브랜드가 됐을까.' 동대문 생산 인프라와 플랫폼, K컬처를 기반으로 성장한 K패션의 진화 과정을 짚어봅니다.
주의사항 K패션의 성장 배경을 분석한 기사입니다. 모든 국내 패션 브랜드가 동일한 성장 경로를 걸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관전포인트 이 기사는 '왜 K패션이 잘되고 있는가'를 다룹니다. 브랜드 성공 사례보다 국내 의류산업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에 초점을 맞춰 읽으면 더욱 흥미롭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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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한국은 해외 유명 패션 브랜드의 옷을 만들어 수출하는 생산기지였습니다. 지금은 젠틀몬스터와 마뗑킴 등 자체 브랜드를 앞세워 세계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단계로 성장했습니다. 이처럼 오늘날 세계가 주목하는 ‘K’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산업 경쟁력과 기업들의 도전이 만든 결과입니다. ‘K의 시간’ 시리즈는 생산 경쟁력을 기반으로 성장한 한국 산업이 어떻게 글로벌 브랜드를 키워내는 산업으로 진화했는지 살펴보고, 세계 시장에서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과제를 짚어봅니다.

서울의 한 마뗑킴 플래그십 스토어 내부 모습. 심하연 기자
서울의 한 마뗑킴 플래그십 스토어 내부 모습. 심하연 기자
해외 명품 브랜드의 옷을 대신 만들던 한국 패션산업이 이제는 자신의 이름을 단 브랜드로 세계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한때 ‘잘 만드는 나라’로 불렸던 한국은 동대문을 중심으로 한 생산 인프라와 온라인 플랫폼, K컬처를 발판 삼아 글로벌 브랜드를 키워내는 산업으로 빠르게 진화했다. 제조 경쟁력을 기반으로 성장했던 산업이 이제는 브랜드 경쟁력으로 세계 소비자와 만나는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K-패션의 현재를 보여주는 성수

이 같은 변화를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곳 가운데 하나가 서울 성수동이다. 6일 찾은 서울 성수동 연무장길은 늘 그렇듯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캐리어를 끌고 마뗑킴 매장으로 향하는 관광객, 이미스에서 모자와 가방을 여러 개 구매하는 외국인 손님, 젠틀몬스터 플래그십에서 제품보다 공간을 먼저 둘러보며 사진을 찍는 방문객들의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다.

호노카(22·일본 도쿄)씨는 “한국 브랜드는 일본에서도 살 수 있지만 한국 매장이 제품도 다양하고 신상품도 가장 빨리 나온다”며 “SNS에서 보던 브랜드를 직접 방문하는 것도 여행 일정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풍경은 쉽게 볼 수 없었다. 지금의 K패션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다. 한국 패션산업은 지난 반세기 동안 생산에서 유통, 이젠 브랜드로 중심축을 옮기며 산업 구조 자체를 바꿔왔다.


베트남의 한 의류시장에서 작업자들이 의류를 봉제하고 있다. 해외 패션 브랜드의 생산기지 역할을 하는 현장은 과거 한국 패션산업이 성장했던 모습과 닮아 있다. 심하연 기자
베트남의 한 의류시장에서 작업자들이 의류를 봉제하고 있다. 해외 패션 브랜드의 생산기지 역할을 하는 현장은 과거 한국 패션산업이 성장했던 모습과 닮아 있다. 심하연 기자
시작은 봉제공장…제조 경쟁력이 만든 성장 기반

출발점은 봉제공장이었다. 1960~1980년대 평화시장과 동대문 일대에는 수많은 봉제공장이 들어섰고, 한국은 해외 의류 브랜드의 생산기지로 성장했다. 해외 브랜드가 디자인을 보내오면 국내 업체들이 이를 생산해 수출하는 OEM과 ODM 방식이 산업의 중심이었다. 이 과정에서 축적된 생산기술과 제조 노하우는 한국 패션산업의 가장 큰 자산이 됐다.

특히 동대문을 중심으로 형성된 생산 생태계는 한국 패션의 경쟁력을 키운 핵심 기반으로 꼽힌다. 원단과 부자재, 패턴실, 봉제공장, 도매시장이 한곳에 모여 있어 짧은 시간 안에 샘플 제작부터 생산까지 가능한 구조를 갖췄다. 빠른 납기와 소량 다품종 생산은 변화하는 유행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경쟁력으로 이어졌고, 지금도 국내 패션 브랜드들의 성장 기반으로 남아 있다.

플랫폼이 바꾼 패션산업

제조 경쟁력 위에 새로운 변화를 만든 것은 온라인 플랫폼이었다. 과거에는 백화점 입점 여부가 브랜드의 성패를 좌우했다면, 온라인 플랫폼은 신생 브랜드도 소비자와 직접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브랜드들은 더 이상 대형 유통망에 의존하지 않고도 인지도를 쌓을 수 있게 됐고, 이는 국내 패션산업의 성장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무신사다. 무신사는 단순한 온라인 쇼핑몰을 넘어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를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브랜드들은 무신사를 통해 소비자를 확보했고, 글로벌 스토어를 기반으로 해외 시장까지 진출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현재 글로벌 스토어를 비롯한 해외 채널에는 4000여 개 K패션 브랜드가 입점해 있으며 일본을 중심으로 거래 규모를 빠르게 키우고 있다.

실제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무신사의 글로벌 사업 누적 거래액은 지난해 약 2400억원을 기록했고, 일본 거래액은 전년보다 145% 증가했다. 같은 해 수출 실적도 489억원으로 전년 대비 10배 이상 늘었다.


K-패션의 60년 성장기. 한지영 디자이너
K-패션의 60년 성장기. 한지영 디자이너
K-컬처가 이것까지 키웠다

여기에 K-팝과 K-드라마를 중심으로 한 K-컬처 확산은 한국 패션이 해외 소비자와 만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브랜드를 찾는 소비자가 늘었고, 인스타그램과 틱톡 등 SNS는 국경을 넘어 브랜드를 알리는 창구 역할을 했다.

과거에는 현지 유통망을 확보해야 해외 진출이 가능했다면, 이제는 콘텐츠를 통해 브랜드를 먼저 알리고 온라인에서 소비자를 확보하는 방식이 일반화된 상황이다.

K컬처와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해외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힌 국내 브랜드들은 각자의 강점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섰다. 브랜드마다 전략은 달라도, 현지 소비자에게 브랜드 경험과 정체성을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젠틀몬스터는 매장을 하나의 전시 공간으로 꾸며 브랜드 경험을 앞세웠고, 마뗑킴은 일본 시장을 중심으로 팬층을 확보하며 오프라인 매장을 확대했다. 이미스는 모자와 가방 등 잡화를 앞세워 브랜드 진입장벽을 낮췄고, 마르디 메크르디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차별화 요소로 내세우며 일본과 중국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제조 강국에서 ‘브랜드 강국’으로

전문가는 K-패션의 해외 성장을 제조 경쟁력과 플랫폼, K컬처가 맞물린 결과로 본다. 동대문을 중심으로 한 빠른 생산 인프라가 브랜드의 상품 대응력을 높였고, 온라인 플랫폼과 SNS는 해외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혔다. 여기에 K팝과 K드라마를 중심으로 한 K컬처 확산이 한국 브랜드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면서 K패션이 제조 중심 산업에서 브랜드 산업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분석이다.

성래은 한국패션협회 회장은 올해 초 열린 ‘K-패션 글로벌화 정책 토론회’에서 “글로벌 시장은 K-콘텐츠와 K-뷰티에 이어 K-패션에 주목하고 있다”며 “이제 K-패션은 단순한 의류를 넘어 ‘한국을 입고 싶다‘는 열망을 담은 국가 브랜드의 핵심 자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추호정 서울대학교 의류학과 교수는 "K-패션의 해외 진출은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며 "지금 글로벌 시장은 한국에 초대장을 보내고 있지만, 이 기회를 산업 경쟁력으로 연결하려면 제품이 아니라 브랜드를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제품은 일시적으로 팔릴 수 있지만 오래 살아남는 것은 브랜드"라며 "브랜드 경쟁력은 결국 사람과 시스템, 협력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재는 해방 이후 100년 만에 찾아온 퀀텀점프의 기회”라며 “글로벌 럭셔리 시장의 성장 둔화와 AI·공급망 통합 기술 확산, 지속가능성 중심의 산업 재편이 동시에 이뤄지는 만큼 IT 경쟁력과 지속가능 기술 기반을 갖춘 한국이 새로운 시장 질서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국내 패션업계 관계자는 “한국 패션은 제조 경쟁력을 바탕으로 생산 인프라와 플랫폼, 브랜드, 콘텐츠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며 해외 브랜드를 대신 만들던 산업에서 세계 소비자에게 자신의 브랜드를 직접 판매하는 산업으로 성장했다”며 “이제는 얼마나 잘 만드느냐보다 얼마나 오래 사랑받는 브랜드를 만들어내느냐가 K패션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심하연 기자 sim@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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