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위스 체르마트역 산악열차 무인 발권기 앞. 화면에 뜬 성인 왕복 요금은 ‘132스위스프랑(CHF)’. 우리 돈으로 인당 25만원이 훌쩍 넘는 금액이다. 편도 한 장에만 66스위스프랑(약 12만5000원)이니, 4인 가족 왕복 티켓값을 다 더하면 100만원이 가볍게 넘어간다. 결제 버튼 위로 가져간 손가락이 잠시 떨렸다.
최근 환율이 가파르게 뛰면서 해외여행을 떠난 이들의 지갑에 비상이 걸렸다. 기자는 지난 6월 13~21일 가족들과 함께 프랑스와 스위스를 돌며 직접 ‘고환율 유럽’을 체험했다. 여행 기간 유로화(EUR)는 1유로당 약 1750~1760원, 스위스프랑(CHF)는 1프랑당 약 1900원대를 오르내렸다. 불과 지난해만 해도 1유로에 1600원 안팎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현지에서 메뉴판을 볼 때마다 자연스럽게 계산기를 두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낭만 가득한 유럽, 매 순간 스마트폰 환전 앱을 켜고 가격을 저울질했던 고군분투기를 기록해봤다.

환율의 가혹함은 밥상부터 덮쳤다. 가장 기본적인 ‘먹는 문제’부터 지갑을 죄어 왔다. 가볍게 점심 한 끼를 해결하려 포케 두 그릇을 주문했다. 카드 승인 내역에 찍힌 금액은 31.9유로, 우리 돈으로 5만7327원이었다. 일상적인 식사치고는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액수였다. 간단한 길거리 샌드위치 2개로 끼니를 때울 때도 4만원 안팎이 쑥 빠져나갔다. 특별한 메뉴가 아닌데도 비용이 적지 않았다.

결국 숙소에서는 긴급 가족회의가 열렸다. “외식은 하루에 딱 한 번만 한다. 나머지는 인간적으로 장 봐서 만들어 먹자.” 고환율 앞에서 ‘식비 구조 조정안’은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그날 이후 프랑스 대형마트 까르푸와 스위스의 쿱(Coop) 마트는 우리 가족의 본진이 됐다. 한국에서 챙겨온 비상식량을 풀고, 도시를 옮길 때마다 마트 위치부터 확인했다. 식비를 아껴보겠다는 눈물겨운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고환율 앞에서는 마트 장바구니 물가도 만만치 않았다. 생수와 간식, 저녁 재료 몇 가지만 카트에 담았는데도 계산대에서는 15만원이 훌쩍 넘는 금액이 찍혔다. 초콜릿 한 개만 집어들었는데 8000원이 넘는 돈이 계산됐다. “한국에선 4000원도 안 할 텐데…”라는 탄식이 절로 새어 나왔다.

이동하는 매 순간이 ‘청구서 폭탄’의 연속이었다. 예컨대 스위스 산악마을인 체르마트에 들어가기도 전에 터미널 주차비로 34프랑(6만6484원), 차를 기차에 싣고 터널을 통과하는 셔틀 열차(카레일) 이용료로 31프랑(6만628원)이 줄줄이 통장을 털어갔다. 목적지에 발을 디디기도 전에 교통비로만 10만원 돈이 먼저 나간 셈이다.
스위스 렌터카 비용으로만 이미 120만원 넘게 지출한 상황. 진짜 압박은 주유소로 이어졌다. 국제 정세 불안으로 오른 유가에 원화 약세까지 겹치면서, 프랑스와 스위스의 현지 기름값은 리터당 1.7유로, 1.8~2스위스프랑 안팎까지 올라 있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리터당 3000원을 넘나드는 수준이다. 국내 평균보다 1.5배 이상 비싸다.
리터당 가격표에 고환율과 유가 상승이 그대로 반영되면서, 기름값 부담도 함께 커졌다. 주유칸을 가득 채우지 않아도 금세 10만원이 넘었다. 고속도로 통행료와 주유비 압박이 동시에 밀려오자 운전대를 잡은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당초 잡아둔 여행 예산도 빠르게 깎여나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여행의 소소한 재미인 기념품 쇼핑마저 망설여졌다. 체르마트의 한 소품 점포 매대, 마터호른 산봉우리 모양을 본떠 만든 유리잔이 눈에 들어왔다. 가격은 25.9스위스프랑. 예전 환율 같으면 여행을 추억하며 샀겠지만, 원화로 환산하는 순간 5만원에 육박하는 거금으로 둔갑했다. 사촌에게 줄 20프랑짜리 인형 앞에서도 손이 멈칫하긴 매한가지였다. 결국 ‘에이, 한국 가서 더 좋은 거 사자’며 몇 번을 들었다 놨다 하다가 빈손으로 돌아서야 했다.

예비 신혼부부 “결혼식 끝나기도 전 빚 안고 시작하는 기분”
비단 기자 가족만의 문제는 아니다. 고환율이 장기화되면서 해외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의 부담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평생 한 번뿐인 신혼여행을 준비하는 예비부부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결혼을 앞둔 이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연일 “유로, 스위스프랑이 너무 올라 진짜 미치겠다”, “비행기 표만 끊어놓고 무서워서 환전은 손도 못 대고 있다”, “미리 환전해 두지 않은 과거의 내 손가락이 원망스럽다” 등 고환율을 성토하는 글들이 쏟아진다.
올 가을 결혼을 앞두고 유럽 신혼여행을 예약한 직장인 여인선(29)씨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여씨는 “일생에 한 번뿐이라 큰맘 먹고 유럽 투어를 예약했는데 환율이 이렇게까지 오를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씁쓸해했다. 그는 “보통 결혼식 당일 들어오는 축의금으로 신혼여행 현지 비용이나 카드값을 충당할 계획을 세우는데, 환율이 뛰면서 당초 잡아둔 예산 범위를 완전히 벗어났다”며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빚을 잔뜩 안고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동남아나 일본 등 비교적 환율 부담이 적은 대체지로 눈을 돌리는 이들도 늘었다. 직장인 김지훈(30)씨는 “신혼여행지를 유럽 대신 국내나 동남아로 방향을 바꿀까 고민 중”이라며 “결국 지금 할 수 있는 건 빨리 환율이 내려가길 바라는 것뿐”이라고 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