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5일 (6)
25인치가 ‘L사이즈’인 이상한 나라 [취재진담]

25인치가 ‘L사이즈’인 이상한 나라 [취재진담]

승인 2026-07-24 06:00:05 수정 2026-07-24 10:3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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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을 빼니까 입고 싶었던 옷이 다 맞아서 좋아.”

친구가 최근 마운자로를 맞기 시작했다. 키 160㎝에 몸무게 48㎏. 이미 충분히 마른 체형이지만 조금 더 체중을 줄이고 싶다고 했다. 식욕이 떨어지고 속이 더부룩한 불편함을 겪으면서도, 예전보다 옷이 잘 맞고 핏도 예뻐졌다며 만족해했다. 평소 M이나 L사이즈를 입으면 자신이 뚱뚱하게 느껴진다는 말도 덧붙였다.

요즘 주변에서는 비슷한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듣는다. 위고비와 마운자로가 대중적으로 알려지면서 체중 감량의 문턱도 낮아졌다. 주변에선 ‘한 사이즈 줄었다’, ‘입고 싶던 옷을 입게 됐다’는 후기가 쏟아진다. 건강을 위해 살을 빼는 사람도 있지만, 다이어트를 시작한 이유로 ‘옷 핏’을 꼽는 여성도 적지 않다.

그런데 패션업계를 취재하다 보면 반대편의 이야기도 들린다. 여성들의 몸만 작아진 것이 아니라 여성복의 사이즈 자체가 과거보다 작아졌다는 것이다. 마른 사람이 더 마른 몸을 원하게 된 배경에는 옷이 사람의 몸을 따라가는 대신, 사람의 몸을 옷에 맞추게 만든 시장도 있다.

최근 취재를 위해 여러 보세 브랜드의 바지 사이즈를 살펴보다 눈을 의심했다. 한 제품의 L사이즈 허리 단면은 32㎝였다. 둘레로 환산하면 64㎝, 약 25.2인치다. 통상 작은 체형을 상징해온 25인치 허리의 바지를 ‘L’라고 판매하고 있었다. 이 기준에 따르면 허리둘레가 26~27인치인 여성도 가장 큰 사이즈를 입거나 아예 구매를 포기해야 한다.

마른 소비자가 늘었다면 XXS나 XS를 추가하면 된다. 체형이 다양하다면 치수도 그만큼 세분화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여성복 시장은 작은 사이즈를 새로 만드는 대신 기존 S와 M, L의 실제 치수를 줄여왔다. 소비자는 이전과 똑같은 M을 골랐는데도 옷이 맞지 않고, 옷의 규격보다 자신의 몸을 먼저 의심하게 된다.

브랜드마다 기준도 제각각이다. 어느 곳의 M은 넉넉하지만 다른 곳의 M은 지퍼조차 올라가지 않는다. 같은 쇼핑몰에서 산 제품끼리도 실측이 다르다. 본인의 허리나 어깨, 엉덩이 둘레를 매번 기억하고 비교해서 구매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사이즈를 나타내는 숫자와 알파벳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니 소비자가 매번 새로운 규격을 해독해야 한다.

‘프리사이즈’도 자유롭지 않다. 프리사이즈라면서 실제로는 44~66 정도만 입을 수 있는 옷이 적지 않다. 다양한 체형을 포용한다는 의미와 달리 생산자가 한 가지 규격만 만들겠다는 뜻에 가깝다. 재고와 생산비를 줄이는 데에는 유리하지만, 그 부담은 맞지 않는 옷을 받아 들고 교환과 반품을 반복하는 소비자의 몫이 된다.

왜 다양한 사이즈를 만들지 않을까? 나름의 이유는 있다. 여성복은 유행 주기가 짧고 상품 종류가 많다. 새로운 디자인을 빠르게 출시해야 하는 만큼 한 제품을 여러 사이즈로 세분화하면 생산과 재고 부담이 커진다. 결국 많은 브랜드는 다양한 사이즈를 늘리기보다 기존 S와 M, L의 기준을 조금씩 조정하는 방식을 선택해왔다.

패션 시장의 주 소비층은 여성이다. 어느 나라를 봐도 여성은 남성보다 더 자주, 더 많은 옷을 구매한다. 그렇다면 시장도 다양한 체형의 소비자가 자신의 몸에 맞는 옷을 선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여성복은 다양한 몸을 담기보다 소비자가 옷의 기준에 몸을 맞추도록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가장 많은 옷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오히려 ‘살을 더 빼야 이 옷을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현실은 조금 씁쓸하다.

사이즈는 유구히 수많은 여성들의 몸과 정신을 옥죄어 왔다. 봉제선이 터지거나 원단에 보풀이 생기면 옷의 품질을 의심할 수 있지만, L사이즈가 맞지 않을 때는 자신의 몸을 탓하기 쉽다. 사이즈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시장이 어떤 몸을 ‘보통’으로 인정하는지 보여주는 기준이다. 25인치를 L라고 부르는 순간, 그보다 큰 수많은 몸은 정상적인 범위 밖으로 밀려난다.

가장 많은 옷을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더 작고, 더 불편하며, 오래 입기 어려운 옷을 내놓으면서 몸부터 바꾸라고 요구하는 지금의 방식은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 줄여야 할 것은 여성의 허리둘레가 아니라, 하나의 마른 몸을 ‘표준’처럼 여겨온 여성복 시장의 기준이다.

심하연 기자 sim@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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