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사만의 사정은 아니다. 기업은 청년의 선택을 받기 위해 제품과 광고를 바꾼다. 공공기관은 청년을 정책 결정 과정에 끌어들이기 위해 각종 위원회와 참여 기구를 만든다. 이들이 내일의 시장을 좌우할 세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청년은 결국 모든 조직의 다음 구성원이고, 그 조직을 이어갈 미래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는 수명이 있다. 사람만 늙는 것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절박해야 하는 곳이 있다면 정치권이다. 청년을 유권자로만 남겨둬서는 안 된다. 이들이 정치의 주체로 성장하지 못하면 미래 세대의 현실을 대변할 수도, 낡은 질서를 바꿀 수도 없다.
정치권은 선거에서 질 때마다 청년을 찾는다. 지난 6.3 지방선거라고 해서 다를 것도 없었다. 양당 모두 청년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반성했다. 청년 정치인을 키우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약 한 달 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청년 최고위원을 별도로 선출하자는 방안이 무산됐다. 반면 최고위원 선거에 도전하는 비용은 크게 올랐다.
청년 후보가 이 결정에 문제를 제기하자 논쟁은 제도의 타당성보다 후보 개인의 자격을 따지는 쪽으로 흘렀다. 그 정도 돈도 준비하지 않고 왜 출마했느냐는 비판이 나왔고, 피부과에는 더 많은 돈을 쓰지 않았느냐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청년 후보에게 돈이 있는지, 있다면 어디에 썼는지는 이 사안의 본질과 멀다. 문제는 청년을 찾는 정치권의 언어와 청년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데 있다.
대표성을 보장할 자리를 만드는 데는 인색하다. 경쟁의 조건은 기성 정치인이 가진 자원에 맞춘다. 문제를 제기하면 제도를 돌아보기보다 개인의 준비와 자격부터 의심한다. 정치권이 새로운 세대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대개 이렇다. 청년 정치인을 키우겠다는 말과 실제 청년 후보를 대하는 태도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
더불어민주당에 지금 필요한 것이 청년을 위한 또 하나의 토론회일까. 아니다.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들어도 바뀌지 않는 것이 문제다. 세대 대표성을 보장할 방안을 검토하고, 기탁금의 근거를 다시 따지고, 정치 신인이 실제로 경쟁할 수 있도록 규칙을 고쳐야 한다.
안타깝게도 정치권은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청년 정치인의 등장을 바라면서도 기존 질서와 기준은 그대로 두는 이 기이한 문법을. 그러니 내놓는 해법도 매번 엇나갈 수밖에 없다. 정치권은 지금, 이 순간도 청년을 원한다. 돈과 조직을 갖추고, 기존 정치의 규칙에 순응하며,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청년을 말이다.
민수미 정치부장 min@kuk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