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3일 (6)
우리처럼 작은 존재가 우주의 광대함을 견디는 방법은 [데스크 창]

우리처럼 작은 존재가 우주의 광대함을 견디는 방법은 [데스크 창]

승인 2026-06-09 19:07:00
Google에서 선호하는 출처로 추가 관심 있는 쿠키뉴스 기사를 Google 검색에서 더 쉽게 만나보세요.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9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9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여전히 전쟁과 선거로 시끄러운 세상에서, 요즘 골몰하는 주제가 하나 있다. 사랑. 세상에는 수만 가지 관계가 있고, 그와 같은 수만큼의 사랑이 있다고 한다. 그중 내가 겪고, 본 사랑은 얼마나 될까.

막 걷기 시작한 아이의 서툰 발걸음에 맞춰 속도를 늦추는 부모의 보폭. 감기에 걸린 동료 책상 위에 조용히 놓은 쌍화탕 한 병.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마주치는 노인의 걸음에 맞춰 누른 열림 버튼. 급정거한 버스 안에서 넘어질 뻔한 낯선 이의 가방을 붙잡는 손. 나는 그런 것들에서도 사랑을 보았다.

그렇다면 다시, 사랑이란 무엇인가. 영국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아이리스 머독은 사랑을 ‘나 자신이 아닌 어떤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오스트리아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에게 사랑은 하나가 되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고독을 지키며 곁에 서는 일이었다. 미국의 사상가 벨 훅스에게 사랑은 감정이기보다 실천이었다.

나는 사랑의 근본을 조금 더 오래된 말에서 찾고 싶다. 측은지심과 인지상정. 남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고 마음 아파하며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 타인의 처지를 헤아리며 ‘나라도 그랬을지 모른다’라고 생각하는 마음. 사랑은 어쩌면 거창한 헌신보다 헤아림에서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소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광장과 댓글 창에는 저마다의 확신이 넘친다. 먼 곳의 전쟁은 매일 뉴스가 되고, 가까운 정치의 언어는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 이토록 시끄러운 세상에서 사랑을 말하는 것은 얼마나 한가한 일인가. 그러나, 그래서 사랑을 말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선거뿐 아니라 젠더, 세대, 지역, 계층을 둘러싼 논쟁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한다. 청년은 나약해서, 노인은 고집스러워서 문제라고 한다. 남성은 공감이 부족하다는 말로, 여성은 요구가 지나치다는 말로 쉽게 정리한다. 가난한 사람은 노력하지 않은, 부유한 사람은 탐욕스러운 사람으로 몰아간다. 단정은 늘 설명보다 빠르다. 조롱은 질문보다 쉽다.

한 사람을 하나의 구호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누군가의 확신 뒤에는 그가 살아온 시간이 있다. 분노 뒤에는 오래 쌓인 불안이 있을 수 있다. 의심 뒤에는 반복된 불신이 있을 수 있다. 거친 말 뒤에는 설 곳이 줄어들고 있다는 두려움이 있을 수 있다.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한 사람을 섣불리 재단하지 않는 마음. 틀렸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비웃으며 몰아세우지는 않는 태도. 다른 편에 선 사람에게도 그만한 사정이 있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해 보는 일. 그것은 연민이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하는 사람들 사이에 필요한 최소한의 존중이다.

사랑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데 있지 않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 데 있다. 측은지심과 인지상정이 남아 있다면, 우리는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과도 다시 말할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 소란한 세상에서 사랑을 말할 이유는 충분하다.

민수미 콘텐츠전략부장 min@kukinews.com
민수미 기자
안녕하세요. 민수미 기자입니다.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추천해요
    0
  • 슬퍼요
    슬퍼요
    0
  • 화나요
    화나요
    0

쿠키오리지널

전체보기

쿠키피드

전체보기

슥- 넘겨 보는 세상 이야기, 기자의 솔직한 코멘터리까지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