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0일 (5)
범위 좁히면 한계, 넓히면 충돌…10차 개헌의 딜레마 [개헌의 문턱③]

범위 좁히면 한계, 넓히면 충돌…10차 개헌의 딜레마 [개헌의 문턱③]

선관위 개편·계엄 통제·5·18 전문 수록은 단계적 개헌론의 출발점
권력구조 개편까지 넓히면 여야 이해관계 충돌 불가피
기본권 확대 요구도 커졌지만 개헌 범위 넓을수록 합의 난도 상승

승인 2026-07-08 11: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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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8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중 국민의힘 의원들이 개헌안에 반발하며 퇴장해 국민의힘 의석이 비어 있다. 임은재 기자
지난 5월8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중 국민의힘 의원들이 개헌안에 반발하며 퇴장해 국민의힘 의석이 비어 있다. 임은재 기자
개헌 논의의 다음 쟁점은 ‘무엇을 고칠 것인가’보다 ‘어디까지 고칠 수 있느냐’다. 1987년 헌법 체제가 39년째 이어지는 동안 대통령제 개편, 헌법기관 통제, 지방분권, 기본권 확대 등 개헌 의제는 쌓여왔다. 그러나 의제를 넓힐수록 여야 이해관계는 복잡해지고, 합의 가능성은 낮아진다.

정치권에서 단계적 개헌론이 힘을 얻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선관위 개편, 비상계엄 통제 강화, 5·18민주화운동과 부마항쟁의 헌법 전문 수록 등 비교적 합의 가능한 의제부터 처리하자는 주장이다. 반면 권력구조 개편과 기본권 확대까지 담아야 39년 묵은 헌법의 한계를 제대로 고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결국 10차 개헌의 관건은 개헌 의제의 크기와 정치적 합의 가능성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을 수 있느냐다.

합의 가능한 의제부터…단계적 개헌론 부상

이재명 대통령도 단계적 개헌 필요성을 언급해 왔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월2일 국회에서 열린 추가경정예산안 시정연설에 앞서 우원식 전 국회의장, 여야 지도부와 만나 “부분적으로라도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개헌 논의는 과거에도 반복됐지만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정치권 안팎에서 전면 개헌보다 단계적 개헌론에 무게가 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처음부터 권력구조 개편과 기본권 확대까지 모두 담으려 할 경우 여야 간 셈법이 복잡해지고, 개헌 논의 자체가 다시 멈출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단계적 개헌론은 개헌 의제를 좁혀 성공 가능성을 높이자는 접근이다. 여야 이견이 상대적으로 적고 국민적 공감대가 큰 의제부터 처리한 뒤, 권력구조 개편이나 기본권 확대처럼 이해관계가 첨예한 의제는 추가 논의로 이어가자는 구상이다. 작게 고치면 통과 가능성은 커지지만, 헌법의 근본 과제를 뒤로 미룬다는 한계도 함께 남는다.

선관위 개편, 현실적 출발점 되나

최근 정치권에서 가장 현실적인 개헌 과제로 거론되는 것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개편이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선관위 운영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냈고, 선관위에 대한 외부 견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로 이어졌다.

선관위 개혁은 법률 개정만으로 풀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관위가 헌법상 독립기관으로 규정돼 있어 감사원 직무감찰 등 외부 통제 장치를 도입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도 2025년 2월 선관위가 감사원의 직무감찰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통령 등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선관위를 독립기관으로 둔 헌법 취지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선관위 구성과 책임성 문제 역시 헌법과 연결돼 있다. 현행 헌법은 선거관리위원을 9명으로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이 3명을 임명하고, 국회가 3명을 선출하며, 대법원장이 3명을 지명하는 방식이다. 파면 요건도 엄격하다. 위원 정수를 조정하거나 책임성 강화를 위해 파면 사유를 확대하려면 헌법 조항을 손봐야 한다.

정부·여당은 최소한의 헌법 수정으로 선관위 견제 장치를 보완하는 원포인트 개헌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에서 “여야 간 일치가 되면 선관위에 관한 원포인트 개헌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도 ‘국민참정권 수호를 위한 제도개혁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선관위 개편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국민의힘은 선관위 개혁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개헌 추진 시기에는 신중한 태도다.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달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당장 시급한 것은 개헌보다 특검”이라고 밝혔다. 선관위 원포인트 개헌이 합의 가능한 출발점으로 거론되지만, 실제 개헌 논의로 이어지려면 여야가 추진 순서부터 맞춰야 하는 상황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G7 참석·유럽 순방 결과 브리핑에서 ‘원포인트 개헌’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G7 참석·유럽 순방 결과 브리핑에서 ‘원포인트 개헌’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감대 넓은 의제도 절차 앞에서 멈췄다

헌법 전문에 5·18민주화운동과 부마항쟁 등 민주화운동 정신을 수록하는 방안도 단계적 개헌론의 주요 의제다. 비상계엄에 대한 국회 통제 강화 역시 비교적 공감대가 넓은 사안으로 꼽힌다. 조정식 국회의장은 지난달 5일 국회 본회의 당선 인사에서 해당 의제들을 언급하며 개헌 의지를 밝혔다.

여론도 이를 뒷받침한다. 5·18기념재단이 지난달 1일부터 3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6년 국민 인식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7.3%가 5·18민주화운동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비상계엄에 대한 국회 통제 강화는 찬성률이 더 높다. 국회사무처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 2월 5일부터 20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만256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계엄 선포 후 일정 시간 내 국회 승인을 받지 못하면 즉시 무효’ 또는 ‘국회 의결 시 즉시 무효’로 하는 방안에 각각 77.5%가 찬성했다.

그러나 공감대가 곧 정치 합의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지난 5월 7일 본회의를 앞두고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우원식 당시 국회의장, 여야 원내대표와 회동한 자리에서 “개헌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일부 합의될 수 있는 내용만으로는 ‘누더기 개헌’이 될 수 있다”며 “선거 일정에 맞춘 졸속 개헌”이라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본회의 개헌안 표결에 불참했다.

이는 단계적 개헌론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5·18 헌법 전문 수록과 계엄 통제 강화처럼 내용상 공감대가 큰 의제도 추진 방식과 시기를 둘러싼 정치적 이견 앞에서는 멈출 수 있다. 무엇을 담을 것인가 못지않게 누가, 어떤 절차로 추진하느냐가 개헌의 성패를 가르는 셈이다.

권력구조 개편, 핵심이지만 가장 어려운 의제

권력구조 개편은 개헌 논의의 핵심이다. 그러나 동시에 개헌 범위를 넓히는 순간 합의 가능성을 가장 크게 떨어뜨리는 의제이기도 하다. 대통령 권한 분산과 권력 재편 문제는 여야 이해관계와 직결된다. 지난 4월 발의된 개헌안에서 권력구조 개편이 빠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 논의되는 방안으로는 대통령 4년 중임제, 결선투표제 도입, 국무총리 국회추천제, 감사원 국회 이관 등이 있다. 하지만 각 방안은 권력의 배분 방식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대통령 권한을 어떻게 나눌지, 국회 권한을 어디까지 키울지, 감사원을 어느 기관 아래 둘지를 두고 정치세력 간 이해가 엇갈릴 수밖에 없다.

이석연 국민통합위원장은 지난 1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 ‘국민통합컨센서스:대화 2026’에서 “어느 권력 구조가 최선인지에 대한 정답은 없고, 그 선택은 국민의 결단사항이므로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국민여론 수렴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현행 5년 단임제는 임기 초반 권력 집중과 임기 후반 레임덕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반복해 왔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러나 이를 어떤 제도로 바꿀지를 두고는 합의가 쉽지 않다. 대통령 4년 중임제는 책임정치를 강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대통령 권한이 충분히 분산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권력 집중을 연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무총리 국회추천제와 감사원 국회 이관 역시 국회 권한 강화 문제와 맞물린다.

학계에서는 권력구조 개편이 빠진 개헌은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 헌법은 제왕적 대통령제와 제왕적 국회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며 “이 같은 권력 집중 구조를 바로잡지 않으면 국민의 권리도 실질적으로 보장되기 어렵고, 다른 개헌 조항 역시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결국 권력구조 개편은 개헌의 의미를 키우지만, 동시에 개헌의 난도를 높이는 의제다. 단계적 개헌론이 이 문제를 뒤로 미루면 ‘반쪽 개헌’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고, 처음부터 권력구조까지 포함하면 여야 합의가 더 어려워진다.

국민 삶의 의제, 기본권 확대도 뒤로 밀릴 수 없다

개헌 논의가 선관위 통제나 권력구조 개편에 집중될수록 국민 삶과 직결된 기본권 의제는 뒤로 밀릴 수 있다. 민주주의 강화와 권력구조 개편이 핵심 의제인 것은 분명하지만, 개헌이 정치권의 권한 재배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현행 헌법은 국가 권력의 침해를 막는 자유권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그러나 1987년 이후 한국 사회는 크게 달라졌다. 비정규직 확대와 플랫폼 노동 확산, 주거 불안, 고령 빈곤, 기후위기, 디지털 환경 변화 등은 기존 기본권 체계만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과제를 만들었다.

이에 따라 노동권·주거권·사회보장권 등 사회권을 강화하고, 기후위기 대응 권리나 디지털 환경에서의 기본권 보호를 헌법에 반영해야 한다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현행 헌법이 민주화 이후 국가권력 통제에 초점을 맞췄다면, 다음 헌법은 달라진 국민의 삶을 담아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만 기본권 확대도 쉬운 의제는 아니다. 사회권 강화는 재정 부담과 정책 설계 문제로 이어진다. 헌법에 권리를 새로 명시하더라도 이를 뒷받침할 법률과 예산, 제도 설계가 뒤따르지 않으면 선언적 규정에 그칠 수 있다. 기본권 확대가 개헌의 필요성을 넓히는 동시에 합의 난도를 높이는 이유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국민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주거·노동·돌봄 등 일상과 직결된 권리를 헌법에 담아내는 것”이라며 “헌법은 국민 삶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방향으로 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게 고치면 한계, 크게 고치면 충돌

10차 개헌 논의는 두 갈래의 압박을 동시에 받고 있다. 하나는 합의 가능한 의제부터 처리해 39년간 반복된 개헌 실패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압박이다. 다른 하나는 권력구조와 기본권까지 다루지 않는 개헌은 1987년 헌법의 한계를 근본적으로 넘기 어렵다는 압박이다.

작게 고치면 통과 가능성은 커진다. 선관위 개편, 계엄 통제 강화, 5·18·부마항쟁 헌법 전문 수록처럼 비교적 공감대가 큰 의제를 중심으로 개헌을 추진하면 여야 합의의 문턱을 낮출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대통령제 개편과 기본권 확대라는 오랜 과제는 다시 뒤로 밀릴 수 있다.

크게 고치면 개헌의 의미는 커진다. 권력구조 개편과 기본권 확대까지 담으면 39년 묵은 헌법의 한계를 폭넓게 손볼 수 있다. 그러나 의제가 넓어질수록 여야 이해관계는 복잡해지고, 개헌안이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동의를 얻기는 더 어려워진다.

결국 10차 개헌의 성패는 무엇을 담을 것인지보다 어디까지 합의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개헌 의제의 크기와 정치적 합의 가능성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지 못하면, 이번 개헌 논의도 다시 문턱 앞에서 멈출 수 있다.

유병민 기자 ybm@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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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민 기자
정치부 유병민 기자입니다. 복잡한 정치를 쉽게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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