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7일 (2)
내용보다 어려운 ‘정치 합의’…개헌, 정권 후반마다 좌초됐다 [개헌의 문턱①]

내용보다 어려운 ‘정치 합의’…개헌, 정권 후반마다 좌초됐다 [개헌의 문턱①]

정권 후반 개헌론, 국면전환 논란·여야 셈법 속 동력 상실
탄핵 이후 커진 권력구조 개편 요구…문재인 정부도 협치 벽 못 넘어
국민투표법 개정·비상계엄 사태 거치며 개헌 공감대 확대

승인 2026-07-06 06:00:03 수정 2026-07-06 09: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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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부마항쟁 및 5·18 헌법전문 수록 개헌촉구 결의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임은재 기자
4월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부마항쟁 및 5·18 헌법전문 수록 개헌촉구 결의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임은재 기자
1987년 제9차 개헌 이후 역대 정부는 저마다 개헌 필요성을 꺼냈다. 대통령 5년 단임제의 한계,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 지방분권 강화, 기본권 확대 등 명분도 다양했다. 그러나 누구도 ‘10차 개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개헌 논의가 번번이 좌초한 이유는 개헌안의 내용이 부족해서만은 아니었다. 전문가들은 개헌 성패를 가른 핵심 변수로 정치권의 합의 동력을 꼽는다. 특히 정권 후반부에 나온 개헌론은 대부분 ‘국면 전환용’이라는 정치적 프레임을 넘지 못했다.

현행 헌법은 대통령 또는 국회 재적의원 과반이 개헌안을 발의하고,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도록 규정한다. 국민적 공감대만으로는 부족하다. 개헌 저지선을 가진 정치세력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레임덕마다 등장한 개헌론…‘국면 전환’ 넘지 못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정치권은 여러 차례 개헌을 논의했지만 실제 헌법 개정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5대 대선에서 DJP연합을 형성하며 내각제 개헌에 합의했다. 그러나 집권 이후 IMF 외환위기 극복 등을 이유로 개헌을 미뤘고, 결국 약속을 실행하지 못했다.

2000년대 이후 개헌 논의는 주로 정권 후반부에 집중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해인 2007년 대통령 4년 연임제를 골자로 한 이른바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다. 하지만 다음 대선을 1년도 남기지 않은 시점이었다. 유력 대권주자였던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을 향해 “참 나쁜 대통령”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정치권은 개헌 논의를 18대 국회로 넘겼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개헌론은 공론화됐지만 동력을 얻지 못했다. 집권 3년 차 이후 권력구조 개편 논의가 나왔지만 친박계를 비롯한 여권 내부와 야권 모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여야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논의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집권 초 개헌 논의가 국정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수 있다며 거리를 뒀다. 그러나 임기 말인 2016년 최순실 관련 의혹이 불거진 뒤 개헌 추진 의사를 밝혔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국면 전환용 카드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개헌론은 정치적 명분과 동력을 잃었다.

정권 후반부마다 반복된 개헌론은 공통적으로 차기 권력구도와 맞물렸다. 대선주자들이 부상하는 시점에서 대통령 주도의 개헌은 정략적 의도로 해석됐다. 야권도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크지 않았다. 정권 후반, 레임덕 국면에서 추진하는 개헌은 번번이 실패 공식에 갇혔다.

탄핵 이후 커진 개헌 공감대…문재인 정부도 ‘협치의 벽’ 막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국정농단 사태를 거치며 제왕적 대통령제를 손봐야 한다는 여론은 다시 커졌다. 국회는 2016년 1987년 이후 처음으로 개헌특위를 구성해 논의를 이어갔다. 이런 흐름 속에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역대 정부와 달리 집권 초기부터 개헌을 추진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8년 대통령 4년 연임제와 지방분권 강화, 헌법 전문에 5·18민주화운동 등 민주화운동 정신을 수록하는 내용을 담아 개헌안을 직접 발의했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한 첫 사례였다. 탄핵 이후 커진 권력구조 개편 요구와 촛불 민심을 바탕으로 개헌을 빠르게 추진하려는 시도였다. 당시 국회의장실이 의뢰한 여론조사에서도 국민 75.4%가 개헌에 찬성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당시 자유한국당은 “청와대발 관제 개헌”이라며 반대했다. 국회는 재적의원 3분의 2라는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했고, 투표 자체도 성립하지 않았다. 집권 초기라는 시점은 과거보다 유리했지만, 여야 합의를 끌어내지 못하면서 개헌은 멈춰 섰다.

올해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이후 권력분산과 계엄 통제 장치를 헌법에 명문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다시 커졌다. 국회사무처가 지난 2월 실시한 대국민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8.3%가 개헌에 찬성했다.

개헌을 막아온 제도적 장애도 일부 해소됐다. 헌법재판소는 2014년 재외국민의 국민투표 참여를 제한한 국민투표법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국회가 후속 입법을 미루면서 국민투표법은 입법 공백 상태에 놓여 있었다. 지난 3월 국회가 국민투표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할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원내 6당 의원 187명은 지난 4월 계엄 통제 강화와 5·18민주화운동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등을 담은 개헌안을 공동 발의했다. 국민의힘은 개헌 내용에 큰 이견이 없다면서도 표결에는 불참했다. 개헌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내용 자체보다 추진 과정과 정치적 정당성을 둘러싼 이견이 마지막 장애물이 된 셈이다.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개혁신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 등 국민의힘을 제외한 원내 6당 원내대표들이 4월3일 헌법 개정안을 의안과에 제출하고 있다. 김미경 기자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개혁신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 등 국민의힘을 제외한 원내 6당 원내대표들이 4월3일 헌법 개정안을 의안과에 제출하고 있다. 김미경 기자
“개헌은 내용보다 정치적 동력…마지막은 여야가 결정”

전문가들은 역대 개헌 논의의 핵심을 ‘정치적 동력’에서 찾는다. 39년간 개헌 요구는 꾸준히 이어졌고, 의제도 권력구조 개편에서 지방분권, 기본권 확대, 계엄 통제 강화 등으로 넓어졌다. 그러나 정치권은 마지막 순간마다 합의에 실패했고, 개헌은 그때마다 멈췄다.

이헌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개헌 논의와 요구는 꾸준히 있었고, 올해뿐 아니라 이전 여론조사에서도 개헌에 대한 국민 동의는 70% 가까이 나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6월 항쟁처럼 압도적 요구가 있지 않은 한, 개헌의 벽을 넘을 동력이 형성되려면 결국 정치적 합의가 마지막 관문”이라고 짚었다.

개헌에 대한 원론적 찬성이 실제 국민투표 시기와 방식에 대한 합의로 곧장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국회사무처 여론조사에서도 개헌 찬성 여론은 높았지만, 국민투표 실시 시기를 두고는 의견이 갈렸다. 국민투표 시기로 6·3 지방선거를 택한 응답은 39.6%, 2028년 총선은 37.2%, 2030년 대선은 17.0%였다. 2028년 총선이나 그 이후로 시간적 여유를 둔 개헌을 택한 응답이 54.2%로 과반이었다.

이 교수는 “개헌 논의가 꾸준히 반복되면서 어떤 내용으로 개헌을 할 것인지 기본 토대는 어느 정도 마련된 상태”라며 “역대 개헌 추진에서 마지막으로 막혔던 것은 정치권의 협치였다”고 말했다.

이어 “200석의 벽을 넘는 것은 쉽지 않다”며 “개헌은 중대한 정치적 행위인 만큼, 정당들이 명분상으로나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선택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 때까지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에 해당하는 200명은 대통령의 재의요구권마저 무력화할 수 있는 숫자다. 거대 여당이라 해도 개헌의 벽을 넘기 위해서는 강행보다 협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김미경 기자 95923kim@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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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 기자
모든 빛은 궤적을 남깁니다. 권력의 궤적을 기록하겠습니다. 정치부 김미경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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