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세포가 스스로 위치를 드러내 면역세포의 공격을 받도록 만드는 기술이 나왔다.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김유천 교수팀은 암세포 내부에 강한 스트레스를 일으켜 면역세포의 공격을 유도하는 ‘나선형 폴리펩타이드 나노입자’를 개발했다.
연구팀은 이 나노입자에 암세포의 면역 회피를 막는 유전자 치료제를 실어 흑색종과 대장암 생쥐에게 투여했다.
그 결과 종양 성장을 70~80% 억제하고 암세포를 공격하는 세포독성 T세포의 종양 침투를 늘렸다.
암세포는 정상세포처럼 위장하거나 면역반응을 억제하는 단백질을 만들어 면역세포의 감시를 피한다.
연구팀은 암세포에 강한 스트레스를 가해 스스로 위험 신호를 내보내도록 했다.
암세포가 죽으면서 주변 면역세포에 위험을 알리고 공격을 유도하는 ‘면역원성 세포사멸’ 과정에서 암세포는 면역세포를 불러들이고 활성화하는 물질을 방출한다.
연구팀은 아미노산이 길게 연결된 고분자 폴리펩타이드로 나노입자를 만들고 입자 표면의 화학 구조와 입체 모양을 바꿔가며 암세포에 가장 강한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조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양전하를 띠는 4차 아민과 스프링처럼 말린 나선형 구조가 함께 있을 때 나노입자가 암세포막을 효과적으로 통과했다.
4차 아민은 세포막과 쉽게 결합하는 화학 구조로, 이 구조에 나선형 모양을 결합하자 나노입자가 나사처럼 세포막을 파고들어 암세포 안으로 들어갔다.
반면 화학 성분은 같지만 나선형 구조를 풀어놓은 입자는 세포 안으로 거의 들어가지 못했고 면역반응도 유도하지 못했다.

연구팀은 나노소재의 성분뿐 아니라 입체 구조가 치료 효과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나선형 나노입자는 암세포 안으로 들어간 뒤 에너지를 만드는 미토콘드리아와 단백질을 만들고 운반하는 소포체, 물질을 담아 이동시키는 엔도좀의 막을 교란했다.
세포기관이 손상되자 암세포 내부에서 활성산소와 칼슘 이온이 크게 증가했다.
이 변화는 단백질과 세포막, 유전물질을 손상시켜 암세포의 사멸을 유도했다.
죽어가는 암세포는 손상연관분자패턴(DAMPs)을 주변으로 방출했다.
DAMPs는 손상된 세포가 면역세포에 위험을 알리는 신호물질이다.
연구팀은 암세포가 칼레티큘린과 고이동성군단백질1, 아데노신삼인산 등을 방출하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물질들은 면역세포를 종양 주변으로 불러들이고 암세포에 대한 공격을 활성화한다.
유전자 치료제는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의 작동을 막거나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도록 세포에 유전 정보를 전달한다.
하지만 유전물질은 세포막을 스스로 통과하기 어렵고 혈액 속에서 쉽게 분해된다.

연구팀은 유전물질과 강하게 결합하는 구아니디늄 작용기를 나노입자에 넣었다.
이어 구아니디늄의 비율을 조절해 입자가 혈액 속에서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정상세포에 미치는 독성을 줄이도록 설계했다.
나노입자는 메신저 리보핵산(mRNA)과 작은 간섭 리보핵산(siRNA), 유전자 가위 플라스미드 등 여러 유전물질을 세포질까지 전달했다.
연구팀은 흑색종과 대장암 생쥐 모델에서 프로그램된 세포사멸 리간드-1(PD-L1)의 생성을 억제하는 siRNA를 나노입자에 실어 종양에 투여했다.
PD-L1은 암세포가 면역세포의 공격을 피할 때 사용하는 단백질이다.
siRNA가 PD-L1 생성을 억제하면 면역세포가 다시 암세포를 공격할 수 있다.
실험 결과 종양 성장은 70~80% 억제됐다.
암세포를 공격하는 CD4 양성 T세포와 CD8 양성 T세포는 종양 안에서 증가했고, 면역반응을 억제하는 조절 T세포는 감소했다.
면역세포가 분비하는 인터페론 감마와 종양괴사인자 알파, 인터루킨-2, 그랜자임 B도 증가했다.
기존 나노입자가 주로 항암제나 유전물질을 운반하는 역할에 집중했다면 이번 나노입자는 자체 구조로 암세포에 스트레스를 일으켜 면역반응까지 유도했다.
김유천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교수는 “나노소재가 치료제를 전달하는 역할을 넘어 암세포가 스스로 면역반응을 일으키도록 만드는 항암 플랫폼을 제시했다”며 “면역항암과 유전자 치료를 결합한 차세대 치료기술 개발에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1저자인 이수삼 KAIST 생명화학공학과 박사는 “나노소재의 성분뿐 아니라 나선형 구조 자체가 치료 효과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라는 사실을 규명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NRF)과 보건복지부 한국보건산업진흥원(KHIDI), 교육부의 지원을 받았다.
이수삼 KAIST 생명화학공학과 박사가 제1저자로 참여한 연구 결과는 5월 28일 국제학술지 ‘바이오머터리얼즈(Biomaterials)’에 온라인 게재됐다.
(논문명: Helical quaternary amine polypeptide programs membrane stress to drive immunogenic cell death and cytosolic gene delivery for cancer immunotherapy)

이재형 기자 jh@kuk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