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9일 (3)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 (131)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 (131)

천재작가를 파멸로 이끄는 독약 같은 결합

승인 2026-07-27 09: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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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다 피츠제럴드,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스, 1930년대, 출처, <젤다: 그림으로 보는 삶: 젤다 피츠제럴드의 사적인 세계>
젤다 피츠제럴드,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스, 1930년대, 출처, <젤다: 그림으로 보는 삶: 젤다 피츠제럴드의 사적인 세계>
 
젤다는 자살과 방화로 얼룩진 정신적인 고통 속에서 자신만의 예술적 정체성을 찾고자 치열하게 투쟁했다.

특히 1930년대 정신병원 입퇴원을 반복하는 동안 집중적으로 그려진 그녀의 그림들은, 당대의 평가와 달리 현대에 이르러 ‘남편의 그늘에 가려진 독창적인 아방가르드 예술’로 재평가받고 있다.
 
초록의 풀에 자리한 그레이트 스모키 산의 풍경은 맑고 청신한 기운을 품은 듯하지만, 침엽수의 날카로운 바늘은 빛을 받아 빛나며 젤다의 정신적 불안감을 보여주는 듯하다.

젤다 피츠제럴드 회화의 주요 특징은 왜곡된 원근법과 강렬한 색채이다.

평면적이면서도 꿈같은 화면 구성은 입체주의와 표현주의의 영향을 보여준다. 사물과 인물은 요동치고 왜곡되고 있어, 그녀가 느꼈던 심리적 불안과 역동성이 그대로 묻어난다. 뒤늦게 몰두했던 발레에 대한 집착은 그림에서도 핵심 주제로 나타났다.
 
<젤다: 그림으로 보는 삶: 젤다 피츠제럴드의 사적인 세계>는 젤다의 손녀이자 버몬트에 거주하는 작가이며 영화 제작자이고 예술가인 엘리너 앤 라나한이 정성스럽게 엮은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의 삽화 140점과 그림 80점을 싣고 있다.
 
뉴욕과 파리의 도시 풍경부터 환각적인 성경적 우화, 딸 스코티를 위해 만든 섬세한 종이 인형까지. 이 예술은 그녀의 감정 세계를 복잡하게 그려내며 동화에 대한 열정, 부조리한 것에 대한 불경한 춤,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한 엄청난 감수성을 반영한다.

이는 강렬한 지성과 뻔뻔한 장난기로 젤다를 매혹적으로 만든 시각적 기록이다.
 
젤다 피츠제럴드, 타임스퀘어, 1940년대, 출처, <젤다: 그림으로 보는 삶: 젤다 피츠제럴드의 사적인 세계>
젤다 피츠제럴드, 타임스퀘어, 1940년대, 출처, <젤다: 그림으로 보는 삶: 젤다 피츠제럴드의 사적인 세계>
 
젤다는 1940년대에 자신들이 화려하게 누볐던 1920년대의 뉴욕 풍경을 기억에서 길어 올렸다. 대표적인 <타임스퀘어>, <플라자의 분수> 등은 건물이 중심을 향해 쏟아질 듯 기울어져 있고, 거리를 메운 인파는 거대한 감정의 소용돌이처럼 표현되어 있다.

젤다 피츠제럴드, 센트럴파크, 1940년대, 출처, <젤다: 그림으로 보는 삶: 젤다 피츠제럴드의 사적인 세계>
젤다 피츠제럴드, 센트럴파크, 1940년대, 출처, <젤다: 그림으로 보는 삶: 젤다 피츠제럴드의 사적인 세계>
 
스콧 피츠제럴드와 어니스트 헤밍웨이와의 관계는 문학사에서도 가장 뜨겁고 복잡했던 ‘애증의 브로맨스’였다.

헤밍웨이는 피츠제럴드 부부를 깊이 아끼면서도, 동시에 그들이 서로를 파괴해가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과 경멸이 섞인 독설을 남겼다. 헤밍웨이의 회고록 <파리는 날마다 축제>와 편지들을 통해 그 내막을 엿볼 수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출처: 위키피디아
어니스트 헤밍웨이, 출처: 위키피디아

1925년 파리의 딩고 바에서 두 사람은 처음 만났다. 스콧은 이미 <위대한 개츠비>를 발표한 대 작가였고, 헤밍웨이는 아직 무명에 가까운 신인이었다.

스콧은 헤밍웨이의 천재성을 대번에 알아보고 자신의 출판사인 스크리브너스(Scribner’s)에 그를 적극적으로 추천해 주었다. 헤밍웨이의 문학적 성공 뒤에는 스콧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던 셈이다.

스콧 피츠제럴드, 출처: 위키피디아
스콧 피츠제럴드, 출처: 위키피디아

헤밍웨이는 피츠제럴드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그를 관찰하며, "잘생김과 미인 사이의 얼굴에 금발의 곱슬머리, 높은 이마, 생기 넘치고 친근한 눈, 그리고 소녀였다면 미인의 입술이었을 섬세하고 긴 아일랜드식 입술을 가진 소년 같은 남자"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헤밍웨이가 무섭게 성장해 나가고, 반대로 스콧은 알코올 중독과 젤다와의 갈등으로 무너져 내리면서 두 사람의 역학관계는 뒤바뀌기 시작했다. 헤밍웨이는 스콧의 재능이 낭비되는 것을 보며 무척 괴로워했다.
 
헤밍웨이는 스콧과 젤다의 관계를 “천재작가를 파멸로 이끄는 독약 같은 결합”으로 보았다. 특히 젤다가 스콧의 재능을 질투하여 일부러 글을 못 쓰게 방해한다고 확신했다. 예리했던 헤밍웨이는 젤다의 정신적 불안정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는 젤다를 ‘미친 여자’라고 부르며 아주 노골적으로 싫어했다.
 
“젤다는 스콧이 글을 쓰는 것을 질투했다… 스콧이 일을 시작하려고만 하면 젤다는 남편을 취하게 해 방해했다. 그녀는 질투라는 엄청난 열정으로 스콧을 파괴하고 있었다.”라고 헤밍웨이는 회고록에서 말하고 있다.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컬렉터이자 미국인 작가인 거투르드 스타인의 살롱에서 헤밍웨이와 스콧과 젤다 부부가 나오는 명장면이 있다. 주인공 길을 헤밍웨이가 유일하게 문학적으로 신뢰하는 거트루드에게 데려가면서 이 장면은 시작된다.
 
스콧이 거실에 들어서며 아내 젤다의 행방을 찾는다. 젤다는 다른 방에서 투우사와 춤을 추거나 어울리며 스콧의 애를 태우고 있었다. 스콧은 아내의 재능을 인정하면서도, 그녀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와 돌출행동 때문에 늘 전전긍긍했다.
 
거트루드 스타인이 명명한 “길 잃은 세대(Lost Generation)”의 핵심 인물들이 한 공간에 놓인 장면이다.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은 질투, 불안, 알코올 중독, 불화로 가득 찬 예술가들의 ‘인간적인 결핍’을 우디 앨런 감독이 특유의 위트와 세련된 연출로 풀어냈다.

파리 아파트에서 피카소의 <거투르드 스타인의 초상>과 거투르드 .
파리 아파트에서 피카소의 <거투르드 스타인의 초상>과 거투르드 .
 
벽에는 당대 최대의 모더니즘 화가인 피카소와 마티스의 그림이 빽빽하게 걸려 있다. 거투르드는 피카소의 초상화처럼 카리스마 있는 태도로 앉아 있다. 마티스와 피카소를 처음 만나게 해준 이는 거투르드와 리오 스타인 남매였다.
 
하버드의 월리엄 제임스(William James)에게 심리학과 철학을 공부한 오빠 리오 스타인(Leo Stein)과 거투르드
하버드의 월리엄 제임스(William James)에게 심리학과 철학을 공부한 오빠 리오 스타인(Leo Stein)과 거투르드
 
이들 남매는 아버지의 타이타닉 호 사고 이후 유산을 상속받았다. 샌프란시스코에 살던 28살의 리오는 의대에서 낙제한 여동생 거트르드과 함께 1900년 만국박람회를 관람하기 위해 파리를 찾았다. 처음엔 화가가 되려고 파리에 왔지만, 파리에 사는 유대인으로 일종의 아웃사이더였다.
 
그래서인지 리오는 제도권 밖에 있거나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작품들에 특별한 애정을 쏟았다. 자신이 뚜렷한 성취를 이루지 못했다는 부채 의식 때문인지, 그는 늘 새로운 시도를 담은 작품이나 무명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업을 찾아 헤맸다. 페기 구겐하임처럼 넉넉한 자금이 있는 처지도 아니었기에, 철저한 탐구심과 왕성한 호기심으로 피에르 보나르, 빈센트 반 고흐, 에드가 드가, 에두아르 마네의 작품을 하나둘 자신의 컬렉션에 더해 갔다.
 
이후 큰오빠인 마이클과 세라 부부가 파리로 오며 이 가족은 피카소, 마티스, 세잔 등 당대 첨단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수집하고 지원한 파리 아방가르드 미술의 핵심 수집가이자 후원자가 되었다.
 
왼쪽부터 피카소의 <나부, 1905>, 앙리 마티스의 <모자를 쓴 여인, 1905>, 르누아르 작품이 전시된 거투르드의 아파트, 1905, 샌프란시스코 미술관
왼쪽부터 피카소의 <나부, 1905>, 앙리 마티스의 <모자를 쓴 여인, 1905>, 르누아르 작품이 전시된 거투르드의 아파트, 1905, 샌프란시스코 미술관
 
“그의 재능은 나비의 날개에 묻은 먼지 패턴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한동안 그는 나비 자신만큼이나 그 패턴을 인식하지 못했고, 그것이 지워지거나 훼손되는 것을 알지 못했다.”

“스콧 자네는 젤다의 병원비를 대기 위해 싸구려 잡지에 쓰레기같은 글을 파는 행동을 멈춰야 하네. 자네는 스스로를 창녀로 만들고 있어.” 헤밍웨이는 헐리우드에서 시나리오를 쓰며 연명하는 스콧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헐리우드 스타의 거리.
헐리우드 스타의 거리.
 
젤다 역시 헤밍웨이를 극도로 혐오했다. 그녀는 헤밍웨이가 남편 스콧을 술판으로 이끌고 다니는 나쁜 친구라고 생각했고, 헤밍웨이 특유의 ‘거칠고 마초적인 성향을 몹시 가식적’이라고 비판했다.
 
“헤밍웨이는 털이 가슴까지 난 가짜 상남자일 뿐이에요.” 젤다가 스콧에게 헤밍웨이를 멀리하라며 던진 말이다. 젤다는 헤밍웨이가 스콧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경계했고, 두사람을 ‘동성애’라 의심했다.
 
헤밍웨이는 스콧이 죽은 뒤, 그들의 시대를 이렇게 요약했다. “그들은 불꽃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나방 같았다. 그 화려한 불꽃이 자신들을 태워버릴 줄 알면서도 멈추지 못했던 것이다.”
 
뉴올리언스나 몽고메리의 생가를 거닐며, 당대 최고의 작가였던 헤밍웨이가 이 부부를 향해 던졌던 서늘한 경고를 떠올려 본다. 헤밍웨이 눈에 그들은 ‘서로를 갉아먹는 파멸의 짝’이었을지 모르지만, 스콧에게 젤다는 자신의 날개를 태워버릴 것을 알면서도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유일한 불꽃이었다. <끝>


최금희 작가는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미술 사조, 동료 화가,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를 문학, 영화, 역사, 음악을 바탕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현재 서울 영등포문화원, 도서관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홍석원 기자 001hong@kukinews.com
홍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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