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시카고 출신 아치볼드 모틀리는 아프리카계 공동체를 묘사한 화가였다. 그는 잠시 고향을 떠나 파리로 건너간다. 당시 파리는 예술가와 음악가, 이방인들이 뒤섞여 밤마다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던 도시였다. 모틀리는 그곳에서 매일 밤 ‘쁘띠 카페’라는 작은 클럽을 찾았다.
그곳은 말 그대로 세계가 한 테이블에 앉아 있는 공간이었다. 프랑스인, 아프리카 출신, 서인도 제도 출신 사람들이 서로의 억양을 섞어가며 웃고 떠들고, 무대에서는 블루스와 재즈가 쉼 없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정작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이 클럽의 주요 손님이 아니었다. 모틀리는 훗날 이렇게 말한다.
“그게 내가 좋아하는 점이예요.”
그에게 이곳은 인종과 문화가 뒤섞여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현장이었다.
모틀리는 <블루스>에서 인물들을 화면 앞쪽에 바짝 붙여 배치한다. 서로의 어깨가 닿을 듯 겹쳐진 모습, 밝고 평평한 색면, 리듬감 있는 구도로. 그의 붓질은 마치 음악처럼 장면 전체를 흔들어 놓는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관객은 어느새 파리의 한밤중, 작은 클럽의 문을 열고 들어선 손님이 된다.
그러나 그가 그린 건 미국에서 건너온 블루스와 재즈가 세계의 도시에서 어떻게 다시 태어나는지에 대한 기록이었다. “모틀리는 파리에서 세계를 보았고, 그 세계 속에서 다시 미국의 소리를 들었다.”
1920 년대의 파리는 몽파르나스와 몽마르트르를 중심으로 전 세계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모여들던 곳이었다. 특히 프랑스인들은 미국의 재즈를 인종적 편견 없이 ‘가장 현대적이고 신선한 예술’로 받아들였기에, 많은 흑인 재즈 뮤지션들에게 파리는 자유롭게 숨쉬며 창작할 수 있는 해방구였다.
그러나 1929년 주식시장이 붕괴하면서 찾아온 ‘대공황’과 함께 이 화려한 ‘재즈 시대’ 막을 내리게 된다. 시대를 불태웠던 두 사람의 삶 역시 대공황의 그림자와 함께 점차 비극으로 접어들었다. 그들이 남긴 기록과 문학은 오늘날까지도 1920 년대의 낭만과 활기를 가장 생생하게 전해준다.
영원할 것 같았던 이 광란의 시대는 1929년 10월, 단 일주일 만에 완벽한 종말을 고하게 된다. 1929년 10월 24일 검은 목요일과 10월 29일 검은 화요일, 뉴욕 월스트리트의 주식시장이 흔적도 없이 무너져 내렸다.
거품으로 가득 찼던 자산가치가 폭락하면서 은행들이 파산했고, 수많은 공장이 문을 닫았으며, 실업자가 길거리에 넘쳐나게 되며 대공황이 시작되었다.
사실 경제가 무너지기 전부터 이 시대는 내부로부터 썩어가고 있었다. 돈이면 무엇이든 다 된다는 물질만능주의, 개츠비의 허상과 같은 가짜 부, 톰과 데이지의 무책임함으로 표현된 상류층의 극단적 이기주의와 도덕적 해이는 이미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화려한 파티 뒤에 남는 것은 깊은 허무와 숙취뿐이었다.
F. 스콧 피츠제럴드는 대공황이 터지기 전인 1925년에 이 소설을 발표했다. 즉 시대가 완전히 망하기 전에 이미 그 화려함 속에 감춰진 멸망의 징조와 ‘아메리칸 드림’의 타락을 본능적으로 예견하고 기록한 것이다.
데이지라는 잡을 수 없는 환상을 향해 질주하다가 비극을 맞이하는 개츠비의 운명은, 결국 눈앞의 신기루 같은 풍요를 쫓다 대공황이라는 파국을 맞이한 1920년대 미국 재즈 시대의 자화상이었다.
소설 속 데이지 부케넌이라는 여인은 젤다 세이어와 그리고 그가 젤다를 만나기 전 가슴에 품었던 첫사랑 지네브라 킹(Ginevra King) 두 사람 모두에게서 깊은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특히 개츠비의 비극적인 아메리칸 드림과 데이지에 대한 집착의 뼈대는 젤다보다는 첫사랑 지네브라 킹과의 경험에서 고스란히 싹 텄다고 볼 수 있다.
피츠제럴드가 19세인 대학생 시절 시카고에서 만난 지내브라 킹은 시카고 상류층 출신의 대단한 미인이자 자산가의 딸이었다. 피츠제럴드는 그녀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깊은 사랑에 빠졌지만, 결국 신분과 경제적 격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별한다.
“가난한 소년은 부유한 소녀와의 결혼을 꿈꿔선 안 된다” 이별 당시 지네브라의 아버지가 피츠제럴드에게 던진 이 냉혹한 한마디는 젊은 피츠제럴드의 마음에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이 경험은 소설 속에서 “돈이 없는 가난한 장교 출신 개츠비가 부유한 데이지를 바라만 봐야 했던 좌절”로 완벽하게 재현된다. 개츠비가 데이지를 되찾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대한 부를 쌓은 것처럼, 피츠제럴드 역시 지네브라에게 거절당한 뒤 “성공에서 부와 명예를 거머쥐겠다”는 강박적인 야심을 품게 된다.
지네브라와 이별한 후 군에 입대한 피츠제럴드는 앨라바마 주에서 대법관의 딸이자 남부의 전설적인 퀸카였던 젤다 세이어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젤다 역시 처음에는 가난한 무명 작가였던 피츠제럴드와 약혼한 뒤 파혼했다.
하지만 피츠제럴드가 첫 소설 <낙원의 이쪽>(1920)으로 대성공을 거두며 단숨에 부와 명예를 얻자 비로소 결혼한다. 이 과정 역시 데이지가 개츠비를 기다리지 못하고 부유한 톰 부캐넌과 결혼해 버림을 설정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소설 속에서 데이지는 자신의 딸이 태어났을 때 했던 유명한 대사 “아이가 자라서 예쁘고 아름다운 바보가 되었으면 좋겠어. 이 세상에서 여자가 살아남으려면 그 길밖에 없으니까.”는, 실제로 젤다가 딸 스코티를 나았을 때 병상에서 했던 말을 피츠제럴드가 그대로 받아 적은 것이다.
소설 속 데이지가 보여주는 화려하고 자유분방하면서도 사치스러운 ‘재즈 시대 플래퍼’로서의 외면과 디테일한 성격은 아내 젤다에서 온 것이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자신이 사랑했던 이 두 명의 여성을 절묘하게 결합하여,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이면서도 가장 무책임하고 허무한 황금빛 여인 ‘데이지’를 창조했다.
남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를 탐닉했던 젤다의 성격 그리고 두 사람이 누렸던 덧없는 부유함에 허상을 바로 보여주는 문장이 있다.
“나는 살고 싶지 않아요. 먼저 사랑하고, 사는 것은 그저 부수적인 일이고 싶어요.” -스콧에게 보낸 편지 중
스콧 피츠제랄드의 문장은 늘 화려한 파티 뒤에 오는 시스템과 시대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그것은 기적의 시대였고, 예술의 시대였으며, 과잉의 시대였고, 풍자의 시대였다.” 에세이 <재즈 시대의 메아리> 중
젤다는 ‘남부 최고의 미인’이었다. 스콧이 재즈 시대를 관찰하고 기록한 작가였다면, 젤다는 몸소 그 시대 자체가 되어 살아간 ‘최초의 플랫퍼(Flapper, 1920년 대 자유분방한 신여성)’였다. 그녀의 말은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를 보여준다.
“왜 우리 삶이 전부가 노동이어야 하나요, 우리가 이토록 빌려 쓸 수 있을 때? 우리 오직 오늘만 생각해요. 내일의 걱정은 내일로 미뤄두고.”

홍석원 기자 001hong@kuk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