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은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을 부부 공동재산으로 다시 인정했다. 다만 주식을 직접 나누지 않고, 최 회장이 지분을 그대로 갖는 대신 노 관장 몫을 현금으로 채워주는 방식을 택했다. SK그룹 경영권을 흔들 변수는 피했지만, 1조원에 육박하는 돈을 어디서 마련할지가 새 과제로 남았다.
서울고법 가사1부(재판장 이상주 부장판사)는 24일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재산분할 파기환송심 선고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재산분할로 9440억원 및 이에 대해 이 판결 확정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5%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소송비용은 양측이 각자 부담한다.
두 사람의 이혼과 위자료 20억원 지급은 지난해 대법원에서 이미 확정됐다. 이번 재판은 재산분할 액수만 다시 정하는 자리였다.
1조3808억→9440억, 왜 줄었나
1심은 2022년 위자료 1억원과 재산분할금 665억원을 선고했다. 2심은 2024년 위자료를 20억원, 재산분할금을 1조3808억원으로 대폭 높였다. 최 회장의 SK㈜ 주식을 분할 대상에 넣고, 노 관장의 기여도를 35%로 인정한 결과였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재산분할 부분만 다시 심리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노 관장의 부친인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측이 건넨 300억원을 2심이 SK그룹 성장에 대한 노 관장의 기여로 인정한 게 문제였다. 불법 자금은 재산분할 기여도 산정에 넣을 수 없다는 취지였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도 이 판단을 그대로 따랐다. 300억원을 기여도 계산에서 뺀 대신, 혼인 당시 양측 재산과 공동재산 취득 경위, 혼인 기간 등을 다시 따져 분할 비율을 노 관장 3분의 1(33.3%), 최 회장 3분의 2(66.6%)로 정했다. 2심의 35 대 65에서 노 관장 몫이 소폭 줄었다. 여기에 최 회장이 혼인관계가 깨지기 전 경영권 유지 목적으로 친인척에게 넘긴 SK㈜ 주식도 분할 대상에서 제외됐다. 두 요인이 겹치며 최종 지급액은 4368억원 줄어든 9440억원으로 정해졌다.
주가 5배 뛰었지만, 기준은 2년 전
이번 재판 최대 쟁점은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을 언제 가격으로 계산하느냐였다. 노 관장 측은 파기환송심 변론이 끝난 지난달 26일 주가를, 최 회장 측은 2심 변론이 끝난 2024년 4월16일 주가를 기준으로 삼자고 맞섰다.
2024년 4월16일 SK㈜ 종가는 16만2900원이었는데, 지난달 26일에는 81만5000원으로 5배 넘게 뛰었다. 최근 주가를 기준으로 삼았다면 노 관장이 받을 몫도 그만큼 커질 수 있었다.
재판부는 옛 기준을 택했다. 이혼이 사실상 굳어진 뒤 오른 주가까지 전 배우자와 나누는 건 재산분할 제도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주가 상승에는 최 회장의 경영 능력이 크게 작용했다고도 봤다. 다만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른 사실 자체는 분할 비율을 정할 때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SK㈜ 주식 자체는 부부가 함께 일군 재산으로 인정됐다. 최 회장의 경영활동뿐 아니라 노 관장의 가사와 자녀 양육, 대외활동도 재산 가치를 지키는 데 역할을 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주식은 그대로, 현금으로만 지급
법원은 SK㈜ 주식을 실제로 쪼개 나누지 않았다. 최 회장이 지분을 계속 갖고, 노 관장 몫에서 모자란 부분을 현금으로 채워주는 대상분할 방식을 택했다. 최 회장이 그룹 지배구조 핵심인 지분을 지키면서, 이번 판결로 SK㈜ 주주 구성이 바뀌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SK㈜ 사업보고서를 보면 최 회장은 지난해 말 기준 보통주 1297만5472주, 지분율 17.90%를 갖고 있다. 여동생인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 등 특수관계인을 다 더해도 지분율은 25.41%다. 국내 상장사 경영권 방어의 ‘안전선’으로 통하는 30%대에는 못 미친다. 지분이 흔들렸다면 지배구조 자체가 출렁일 수 있었다는 뜻이다.
문제는 9440억원을 최 회장 개인이 현금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다. SK㈜나 계열사가 대신 갚아줄 채무가 아니다.
마침 최 회장이 개인적으로 들고 있는 SK실트론 지분 29.4%의 매각 협상이 최근 두산그룹과의 가격 이견으로 매듭을 짓지 못하고 있다. 협상이 마무리되면 최 회장에게 조 단위 현금이 들어올 수 있지만, 지연되는 상황이라 당장 활용 가능한 자금줄로 보기는 어렵다. 결국 보유 주식을 담보로 자금을 빌리거나, 배당과 개인 자산을 순차적으로 동원할 가능성에 시장의 관심이 쏠린다.
최태원 측 “심려 끼쳐 송구…판결문 검토 후 상고 여부 결정”
최 회장 측 변호인은 선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약 20년에 가까운 재판 과정에서 대법원 판결로 이혼이 확정됐고, 오늘 재산분할에 관한 파기환송심 판결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최태원 회장은 지금까지의 재판 과정에서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송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상고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판결문을 받아보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내용을 검토한 후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겠다”며 “상고 여부 역시 판결문을 검토한 뒤 입장을 결정하도록 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노 관장 측은 선고 직후 별도 입장을 내지 않았다.
양측이 판결에 불복하면 다시 대법원에 상고할 수 있다.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9440억원에 대한 지급 의무나 지연이자도 발생하지 않는다.
이혜민 기자 hyem@kuk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