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1일 (2)
“사탕 하나 드세요”…21년째 ‘단맛’ 나누는 마을버스 타봤더니

“사탕 하나 드세요”…21년째 ‘단맛’ 나누는 마을버스 타봤더니

SNS 달군 강서05번 ‘사탕 기사’… 적막했던 버스 안에 미소 번져
“베푸는 것 자체가 내 행복”… 좋은 기분으로 안전 운행까지

승인 2026-07-18 06:00:05 수정 2026-07-18 14:3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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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정수희(70) 버스 기사가 서울 강서구 일대에서 마을버스 05번을 운행하고 있다. 유정민 기자
지난 16일 정수희(70) 버스 기사가 서울 강서구 일대에서 마을버스 05번을 운행하고 있다. 유정민 기자
“기다림을 덜 지루하게 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사탕이 떠올랐어요. 입에 넣으면 달달해서 기분이 좋아지니까요. 그렇게 시작한 일이 벌써 20년이 넘었네요”

최근 ‘사탕 미담’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달군 정수희(70)씨는 이렇게 말했다. 정씨는 서울 강서구 일대에서 강서05번 마을버스를 운행하고 있는 버스 기사다.

지난 16일 오전 강서구 등촌동의 한 사거리에서 강서05번 마을버스가 신호에 걸리자 잠시 멈춰섰다. 3분간의 신호 대기가 찾아오자 정씨는 익숙하게 운전석 문을 열고 승객석으로 향했다. 그의 손에는 사탕 봉지가 쥐여 있었다. 정씨는 알록달록한 사탕을 사람들에게 차례차례 건네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에 고정된 승객들의 시선이 정씨를 향했다. 뜻밖의 사탕을 건네받은 승객들은 환한 미소로 “감사합니다”라며 두 손을 내밀었다. 적막했던 버스 내부에 온기가 돌았다.

정씨는 “노선의 신호 체계를 잘 알아 적색 신호가 긴 타이밍에 사탕을 나눠준다”며 “출퇴근 시간처럼 승객이 몰릴 때는 안전을 위해 삼가고, 승객들이 적당히 자리에 앉아 있을 때만 전달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16일 정수희(70) 버스 기사가 승객들에게 사탕을 나눠주고 있다. 유정민 기자
지난 16일 정수희(70) 버스 기사가 승객들에게 사탕을 나눠주고 있다. 유정민 기자
정씨가 버스 운전대를 처음 잡은 것은 지난 2005년 인천 부평에서다. 당시 그는 배차 시간에 맞춰 종점에서 대기하는 동안 승객들로부터 “언제 출발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승객들의 기다리는 지루함을 덜어줘야겠다는 생각이 사탕 나눔의 계기가 됐다. 그의 배려는 근무지를 옮긴 후에도 21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의 집에는 사탕이 박스째 쌓여 있다. 매달 사탕 구매로 나가는 돈만 20만원이 족히 넘는다. 정씨는 자신의 나눔 철학이 평소 존경하는 법정 스님의 가르침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그는 “남에게 베푸는 것 자체가 내 행복이자 기쁨”이라며 “기분 좋게 일을 하니 자연스럽게 안전운전도 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버스 안에서 정씨는 연령대를 불문하고 승객들과 허물없이 소통했다. 하교하는 학생들에게 친근한 농담을 건네고 단골 승객들과는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정씨는 “사탕에 감동한 승객 중에 손 편지나 작은 선물을 주시기도 한다”며 “연락처를 주고받고 가깝게 지내는 이들도 많다”고 했다.

지난 16일 정수희(70) 버스 기사가 승객들에게 나눠줄 사탕을 보여주고 있다. 유정민 기자
지난 16일 정수희(70) 버스 기사가 승객들에게 나눠줄 사탕을 보여주고 있다. 유정민 기자
최근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정씨의 사연이 알려진 후, 그를 기억하는 승객들의 감사 인사가 이어지고 있다. 한 네티즌은 “출국 전 마지막으로 탄 버스였는데 사탕을 받고 아직도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고 남겼다. 또 다른 네티즌은 “대학 시절 매번 이 버스를 탔는데 항상 사탕을 두둑하게 챙겨주며 웃어주신 기사님 덕분에 하루를 힘차게 시작할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정작 정씨는 자신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줄도 몰랐다. 연락처를 주고받은 한 승객이 소식을 전해준 덕분에 뒤늦게 알게 됐다.

그는 “내 사탕 하나로 행복을 느꼈다는 댓글들을 보니 감사하고 뿌듯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사탕을 건네면 무시하거나 거절하는 이들도 있지만, 기뻐해 주는 분들이 훨씬 많다”며 “그분들의 미소가 매일 사탕을 나누는 원동력”이라고 했다.

정씨의 정성은 사탕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쉬는 날이면 평소 좋아하는 시나 글귀를 필사해 코팅까지 맡긴다. 완성된 작품은 갈색 봉투에 담아 승객들에게 선물한다. 정씨는 “나로 인해 승객들이 하루에 한 번이라도 행복한 순간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정민 기자 yu@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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