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1일 (0)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 (124)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 (124)

파리의 밤과 여인, 그리고 인상파가 추구한 빛의 실험

승인 2026-06-08 09:03:02
Google에서 선호하는 출처로 추가 관심 있는 쿠키뉴스 기사를 Google 검색에서 더 쉽게 만나보세요.

에드가 드가, 카뮈 부인, 1869~1870, 캔버스에 유채, 72.7x92.1cm,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에드가 드가, 카뮈 부인, 1869~1870, 캔버스에 유채, 72.7x92.1cm,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19세기 파리, 독특한 수집가이자 의사였던 구스타브 에밀 카뮈(1829~1892)는 일본 물건과 도자기를 모으는 취향을 가졌다.

당시 지식인들은 자포니즘에 매료되어 수집 열풍이 불었고, 이후 국립 기메 동양 박물관을 설립하는 기반이 되었다. 그의 아내, 블랑슈 뒤무스티에 드 프레딜리는 드가의 붓끝에서 파리의 밤을 대표하는 얼굴로 남게 된다.

친구인 드가는 초상화를 그리면서 당시 파리 사회의 분위기를 함께 담아냈다. 그림 속 그녀는 일본 부채를 들고 앉아 있는데, 그 부채 하나가 동양적인 분위기를 불어넣는다. 로코코풍 몰딩의 거울, 제2제정 시대의 거실, 은은한 램프 불빛까지…. 모두가 그녀를 둘러싼 무대 장치처럼 보인다.

평론가들은 이 그림을 두고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어떤 이들은 낯설다고 했지만, 미술 비평가 테오도르 뒤레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극찬했다. 드가는 카뮈 부인을 일본 여인처럼 이목구비와 얼굴선을 그린 게 아닌가 싶다. 반쯤 감긴 눈꺼풀 사이로 불타는 듯한 눈빛을 내뿜으며, 보는 이를 압도한다.

그는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저녁 풍경, 램프, 촛불을 많이 그렸다. 중요한 것은 빛의 근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밤의 분위기를 표현하는 것이다.” 결국 이 초상화는 파리의 밤과 여인, 그리고 인상파가 추구한 빛의 실험을 담은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에두아르 마네, 베르트 모리조의 초상, 1873, 캔버스에 유채, 34x26cm, 마르몽탕 모네 미술관
에두아르 마네, 베르트 모리조의 초상, 1873, 캔버스에 유채, 34x26cm, 마르몽탕 모네 미술관

드가의 <카뮈 부인>(1869~1870)은 붉은 톤의 배경과 인물의 대비가 강렬한데, 이후 마네가 그린 <부채를 든 모리조>(1872)와 <베르트 모리조의 초상>(1873)에서도 유사한 붉은 배경이 나타난다. 흔히 마네가 드가에게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연대기를 따져보면 오히려 드가가 먼저 이런 색채 실험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 점은 두 화가의 관계를 다시 보게 만든다. 마네와 드가는 서로 경쟁하면서도 자극을 주고받았는데, 색채와 구도의 실험에서 드가가 선도적 역할을 했다는 증거가 바로 이 작품들이다.

특히 붉은 배경은 인물의 심리적 긴장과 존재감을 강조하는 장치로 쓰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마네는 모리조에 대한 열망을 붉은 톤으로 표현했고 결국 제수씨로 가까이 두게 된다. 결국 그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인상주의의 틀을 넘어 인물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했다.

에드가 드가(1834~1917), 쌍안경을 든 여인, 1877, 종이에 유채, 드레스덴 알베르티눔
에드가 드가(1834~1917), 쌍안경을 든 여인, 1877, 종이에 유채, 드레스덴 알베르티눔

1877년에 그린 붉은 톤의 강렬한 <쌍안경을 든 여인>은 오페라 극장에서 관람객의 시선을 받는 대상이 아니라, 쌍안경을 통해 직접 세상을 관찰하는 능동적인 주체로 묘사된 드가의 매우 독창적인 작품이다.
 

에드가 드가, 발레 <라 소스La Source>의 외제니 피오크르의 초상, 약 1867~1868, 캔버스에 유채, 130.8x 145.1cm, 브루클린 미술관
에드가 드가, 발레 <라 소스La Source>의 외제니 피오크르의 초상, 약 1867~1868, 캔버스에 유채, 130.8x 145.1cm, 브루클린 미술관
 
드가는 발레를 주제로 한 수많은 작품 중 첫 번째 작품에서 누레다 공주 역을 맡은 외제니 피오크르를 묘사한다. 외제니는 1864년에서1875년까지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프리마 발레리나로, 무용수의 우아함과 무대 뒤의 긴장감을 동시에 포착했다.

이 작품은 이국적인 ‘동양’의 환상을 선보였으며, 외제니를 본 작가는 “무함마드의 낙원에서 보닛과 진주 코르셋을 입은 가장 아름다운 금발의 미녀”라 표현했다. 오리엔탈리즘, 제국주의, 서양 남자의 금발 여인에 대한 관음증과 환상이 결합된 전형적인 19세기의 비평이다.

물레방아로 움직이는 개울과 살아있는 말을 포함한 무대 장치와 정교한 의상으로 1866년 파리 오페라에서 공연된 이 작품은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이런 세태를 풍자한 물가에 있는 여인들을 세탁부에 비유한 만화도 그려졌다.

드가는 리허설 중 쉬고 있는 외제니를 묘사한다. 말의 앞다리 사이로 보이는 분홍색 발레 슈즈를 제외하고는 극장 무대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은 없다.

장 바티스트 카르포, 외제니 피오크레, 1869, 대리석, 높이 83x 길이 51x폭 37cm, 오르세 미술관
장 바티스트 카르포, 외제니 피오크레, 1869, 대리석, 높이 83x 길이 51x폭 37cm, 오르세 미술관

카르포는 뛰어난 조각가로 인물의 개성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감각을 지녔다. 특히 외제니의 흉상에서는 그녀의 눈부신 미모와 오똑한 코를 사실적이면서도 우아하게 표현해냈다. 드가가 묘사한 같은 인물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이전엔 로댕과 드가가 가치 있다고 여겼지만, 대리석이 빚어낸 아름다움과 저절로 나오는 탄성을 사랑하게 되었다. 미술사에서 가치가 있다고, 가격이 비싸다고 나에게 감동을 주는 건 아니다.

에드가 드가, <초록의 가수>, 1884년경, 연한 파란색 종이에 파스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에드가 드가, <초록의 가수>, 1884년경, 연한 파란색 종이에 파스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1898년 판매 카탈로그는 한 공연자의 모습을 아주 생동감 있게 담아냈다. 그녀는 마치 작은 원숭이처럼 날렵하고 우아한 몸짓으로 외설적인 노래 구절을 막 끝낸 뒤, 미소 속에 은근한 제스처로 정지하며 관객의 박수를 끌어내고 있다.

원숭이는 성노동자를 상징한다. 작은 눈, 도드라진 광대뼈, 낮은 눈썹은 드가의 조각 〈14살의 어린 무용수〉 모델이었던 노동계급 소녀 마리 폰 괴템(Marie van Goetem)을 떠올리게 하며 논란을 빚었다.

그녀의 드레스는 눈부신 노란색, 청록색, 주황색으로 선명하게 빛나며, 1880년대 중반 아티스트가 탐구했던 강렬한 색조와 대담한 대비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는 드가가 무대나 무대 뒤에서 순간을 포착하는 화가가 아니라, 예술과 사회가 만나는 지점을 기록한 관찰자였음을 말해준다.
 

메트로폴리탄의 드가 룸은 파스텔로 그려진 종이를 보존하기 위해 어둡고 습도를 예민하게 조절한다.
메트로폴리탄의 드가 룸은 파스텔로 그려진 종이를 보존하기 위해 어둡고 습도를 예민하게 조절한다.

에드가 드가, 카페 가수들의 스케치, 약 1877, 석묵, 게티 뮤지엄
에드가 드가, 카페 가수들의 스케치, 약 1877, 석묵, 게티 뮤지엄
 
19세기 파리의 저녁은 가스등이 은은히 켜지며 시작되었다. 해가 지면 화가들은 붓을 내려놓고 카페로 향했다. 대리석 테이블에 둘러앉아 생각을 나누고, 무대에 오른 가수들의 노래를 즐기곤 했다.

그날 밤, 무대 위에는 가수 테레사가 서 있었고, ‘개의 노래(La Chanson du Chien)’를 부르며 관객을 사로잡았다. 노래 속에서 개 짖는 소리를 흉내 내며 장갑 낀 손을 들어 마치 구걸하는 개처럼 애처로운 몸짓을 했다. 관객들은 웃음과 놀라움 속에 퍼포먼스에 빠져들었다.

구석에서는 드가가 연필을 쥐고 그녀를 빠르게 스케치하고 있었다. 그의 선은 테레사의 풍만한 팔과 드레스의 주름, 단정히 묶은 머리카락을 포착했다. 입을 벌리고 고개를 기울인 모습은 울부짖는 듯했고, 드가는 그 순간의 생생한 에너지를 종이에 옮겼다.

오른쪽 상단에는 기묘한 캐리커처가 자리했다. 크게 벌린 입, 드러난 이, 주름진 눈과 튀어나온 코가 과장된 모습으로, 가수의 퍼포먼스를 더욱 잔혹하고 기괴하게 비추었다. 드가의 작품은 종종 논란을 불러왔다. 카페 가수 테레사를 그린 유화 역시 ‘여성혐오’라는 오해를 낳았다. 그러나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여성에 대한 편견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어린 시절, 드가는 어머니의 불륜을 목격해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고 하지만, 사실 드가에게 중요한 것은 결혼보다 예술 그 자체였다. 그는 예술을 수행처럼 여겼고, 화가로서의 삶은 곧 전심전력을 다하는 고행이었다.

드가를 여성혐오로 읽는 것은 그의 예술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해석하는 위험이 있다. 그는 무대 뒤 발레리나, 세탁하는 여인, 목욕하는 여성 등 일상을 집요하게 관찰했는데, 그 시선은 때로는 차갑고 신랄하지만 동시에 인간 존재를 해부하려는 탐구이기도 하다. 드가가 추구한 것은 ‘예술지상주의’로 미학적 진실을 드러내는 데 모든 것을 걸었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종종 불편할 정도로 사실적이고, 이상화된 미보다는 노동과 피로, 긴장과 불안이 드러난다. 바로 그 신랄함이 드가의 힘이며, 인간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예술적 집념의 표현이다.


최금희 작가
최금희 작가
최금희 작가는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미술 사조, 동료 화가,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를 문학, 영화, 역사, 음악을 바탕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현재 서울 영등포문화원, 도서관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홍석원 기자 001hong@kukinews.com
홍석원 기자
신속하고 정확한 기사를 전하고자 합니다.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추천해요
    0
  • 슬퍼요
    슬퍼요
    0
  • 화나요
    화나요
    0

쿠키오리지널

전체보기

쿠키피드

전체보기

슥- 넘겨 보는 세상 이야기, 기자의 솔직한 코멘터리까지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