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8일 (4)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121)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121)

<마담 X>는 후대에 어떻게 소비되었는가? (하)

승인 2026-05-18 07:51:41 수정 2026-05-18 08: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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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 거울 앞의 소녀, 1932, 캔버스에 유채, MoMA
파블로 피카소, 거울 앞의 소녀, 1932, 캔버스에 유채, MoMA

러셀 코너(미국, 1919년생), “오늘의 나는 아니다“, 뉴요커(1992년 11월 23일), 파블로 피카소의 <거울 앞의 소녀>(1932, 뉴욕 현대 미술관)에 나오는 인물이 거울을 응시하며 <마담 X>의 모습을 비춰보는 장면을 담고 있다.
러셀 코너(미국, 1919년생), “오늘의 나는 아니다“, 뉴요커(1992년 11월 23일), 파블로 피카소의 <거울 앞의 소녀>(1932, 뉴욕 현대 미술관)에 나오는 인물이 거울을 응시하며 <마담 X>의 모습을 비춰보는 장면을 담고 있다.

미국 작가 러셀 코너는 피카소의 <거울 앞의 소녀>에 사전트의 <마담 X>를 비춘다. 두 대가의 작품으로 “오늘의 나는 아니다”라고 항변하고 있다.

피카소가 존 싱어 사전트를 닮았을리 없다는 농담은 예술가의 스타일과 정체성이 얼마나 독창적인지를 보여주느 좋은 예다.

1925년 사전트가 세상을 떠난 직후 그의 명성은 잠시 빛을 잃었지만, 바로 그때부터 “마담 X는 패션의 아이콘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1933년 보그 기자가 “그녀의 몸매와 태도는 새로운 패션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평한 순간부터, 이 초상화는 예술가와 배우, 만화가, 패션 사진작가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주었다.

샤넬, 마인 보세, 오귀시타 베르나르 같은 파리의 쿠튀르 디자이너들은 미국 잡지에서 ‘마담 X 스타일’이라 불린 드레스를 선보였다. 길고 몸에 꼭 맞는 검은 드레스는 세련미와 신비로움, 시크함을 상징하며 1960년대까지 패션지에 등장했다.

고트로는 미국인으로 파리 감성을 지닌 인물로서 사전트의 붓끝에 담겼다는 사실은, 당시 프랑스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 고급 맞춤복)가 추구하던 이상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결국 “마담 X”는 시대와 정체성, 그리고 패션의 이상을 담아낸 상징이 된 것이다.

배우 니콜 키드먼이 <마담 x>스타일의 드레스로 보그에 등장한다.
배우 니콜 키드먼이 <마담 x>스타일의 드레스로 보그에 등장한다.

패션 사진작가들의 작업은 단순히 옷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초상화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변주하며 대중문화 속에 새로운 이미지를 퍼뜨린다. 1999년, 배우 니콜 키드먼이 보그에서 스티븐 마이젤을 위해 <마담 X>를 재현했을 때, 그림 속 인물이 시대를 초월해 살아 숨 쉬는 존재임을 드러냈다.

하지만 아무리 니콜 키드먼이 큰 키와 백옥 같은 피부, 우아한 분위기를 지녔다 해도, 그림 속 마담 X의 도도한 콧날과 잘록한 허리, 카리스마는 따라잡기 어렵다. 명화를 재현하는 프로젝트는 종종 원작의 아우라를 넘어서지 못한다. 신디 셔먼처럼 변주와 해석을 더하는 경우는 예외지만, 단순 모방은 본전도 못 찾는 게임이다.

고트로의 옆모습은 특히 신비롭다. 오늘날 성형외과에서 선호하는 ‘살짝 들린 코끝’의 원조라 할 만하다. 턱을 약간 들고 눈을 지긋이 감은 그녀의 나른한 표정은 도발적이면서도 우아하다. 바로 이런 미묘한 뉘앙스가 명화를 명화답게 만드는 힘이다.

존 싱어 사전트, 버지니 아멜리 아베뇨 고트로(Virginie Amelie Avegno Gautreau), “마담 X”의 습작, 1883~84, 종이에 목탄, 개인 소장
존 싱어 사전트, 버지니 아멜리 아베뇨 고트로(Virginie Amelie Avegno Gautreau), “마담 X”의 습작, 1883~84, 종이에 목탄, 개인 소장

사전트가 고트로를 그린 여러 습작 가운데, 유독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평평하게 처리된 얼굴, 어두운 배경, 그리고 대담하게 목탄으로 표현된 느슨한 웨이브 헤어. 이 그림은 사전트가 고트로의 머리카락을 아래로 내린 유일한 예시로, 그녀의 독특한 분위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포착하려는 시도였다.

고트로는 당시 파리 사교계에서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미인’으로 알려졌다. 사전트는 그녀의 존재감을 여러 각도에서 탐구했는데, 이 습작 속 고개 기울임은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에 소장된 〈건배를 드는 고트로 부인〉과도 연결된다. 즉, 사전트가 그녀의 자세와 표정을 실험하며, 다양한 버전 속에서 고트로의 이미지를 구축해 나갔음을 보여준다.

존 싱어 사전트, 알베르 드 벨레로슈, 약 1883, 캔버스에 유채, 63.5x 41.9cm, 개인 소장
존 싱어 사전트, 알베르 드 벨레로슈, 약 1883, 캔버스에 유채, 63.5x 41.9cm, 개인 소장

1880년대 파리, 카를로스 뒤랑이 제자들을 위해 준비한 연례 만찬 자리에서 두 젊은 화가가 처음 마주했다. 웨일스 출신의 알베르 드 벨레로슈(Albert de Belleroche, 1864~1944)와, 이미 두각을 나타내던 사전트였다. 두 사람은 평생을 이어가는 친구가 되었고, 남아 있는 편지들에는 깊은 신뢰와 애정이 묻어난다.

사전트는 벨레로슈의 얼굴을 여러 차례 스케치했다. 각진 턱, 처진 눈꺼풀, 조각 같은 이목구비는 그가 매혹적으로 여긴 아름다움의 전형이었다. 벨레로슈는 훗날 “사전트가 나를 검을 든 영웅처럼 그리려 했다”고 회상했지만, 실제로 사전트의 붓끝은 그를 르네상스 시대의 인물처럼 묘사했다. 튜닉을 입은 모습은 라파엘로의 <빈도 알토비티의 초상>, 티치아노의 <남자의 초상>의 정신과 기법을 불러일으켰고, 그 속에서 사전트가 본 친구의 품격과 아름다움이 드러났다.

예술가의 눈에 비친 친구의 모습은 시대를 초월한 인간적 매력의 기록이었다. 두 사람의 사랑(?)은 그림 속에, 그리고 편지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존 싱어 사전트, 젊은 남자의 머리(알베르 드 벨레로슈)프로필에서, 1883년경, 흰색 종이에 목탄, 펜, 잉크, 예일대학교 미술관
존 싱어 사전트, 젊은 남자의 머리(알베르 드 벨레로슈)프로필에서, 1883년경, 흰색 종이에 목탄, 펜, 잉크, 예일대학교 미술관

사전트와 벨레로슈의 이야기는 미술사 속에서 은근한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사전트가 그를 “마담 X”의 습작 포즈로 그린 그림은 두 사람 사이에 낭만적인 기류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사전트가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사생활에 대해 철저히 비밀스러웠다는 사실이다. 그는 어떤 관계에 대한 명확한 기록이나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

이 때문에 후대의 연구자와 관람객들은 그림 속 인물과 화가 사이의 관계를 추측하며, 작품을 보는 재미가 한층 더 깊어진다. 마치 그림이 숨겨진 이야기와 비밀을 품은 문학 작품처럼 느껴진다. 그림은 이미지로 옮긴 이야기다.

구스타브 쿠르투아(1852~1923), 고트로 부인의 초상, 1891, 106x58.5cm, 오르세 미술관
구스타브 쿠르투아(1852~1923), 고트로 부인의 초상, 1891, 106x58.5cm, 오르세 미술관

사전트가 한 여인을 그렸을 때, 세상은 그녀의 옆모습보다 드레스의 어깨끈에 더 주목했다. 흘러내린 끈과 은근한 노출은 당시 사회의 도덕적 잣대에 부딪히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초상화는 시대가 여성에게 기대한 ‘모습’을 드러내는 거울이었다.

7년 뒤, 구스타브 쿠르투아가 같은 여인을 다시 그렸다. 이번에도 옆모습, 이번에도 흘러내린 어깨끈, 하지만 반응은 달랐다. 조금 더 과감한 노출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호의적이었다. 사전트의 작품으로 이미 예방주사를 맞았고,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사회의 시선이 변했고, 여성의 이미지에 대한 수용의 폭도 넓어진 것이다.

두 초상화를 나란히 놓고 보면, 한 인물의 얼굴보다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시대의 눈빛이다. 그림은 변하지 않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변한다. 그래서 초상화는 언제나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자, 과거를 읽는 기록이다.

안토니오 드 라 간다라(Antonio de La Gandara, 1861~1917), 피에르 고트로 부인, 1897, 캔버스에 유채, 84 x 36 inch, 깁스 미술관(Gibbes Museum of Art),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 찰스턴
안토니오 드 라 간다라(Antonio de La Gandara, 1861~1917), 피에르 고트로 부인, 1897, 캔버스에 유채, 84 x 36 inch, 깁스 미술관(Gibbes Museum of Art),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 찰스턴

1897년, 고트로는 다시 붓 앞에 섰다. 이번에는 안토니오 드 라 간다라가 그녀를 그렸다. 간다라의 화풍은 사전트와 달랐다. 그는 강렬한 대비 대신 부드러운 선을 선택했고, 고트로의 우아함을 한층 세련된 분위기로 담아냈다. 고트로는 이 작품을 가장 좋아했다. 단순한 미적 취향이라기 보다, 자신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기억되기를 원하는지에 대한 선택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사진과 SNS로 자신을 표현하지만, 고트로의 시대에는 화가의 붓이 그 역할을 했다. 그녀가 간다라의 그림을 더 사랑한 이유는 아마도 그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를 발견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끝>


최금희 작가
최금희 작가
최금희 작가는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미술 사조, 동료 화가,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를 문학, 영화, 역사, 음악을 바탕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현재 서울 영등포문화원, 도서관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홍석원 기자 001hong@kukinews.com
홍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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