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7일 (1)
경력 쌓으면 이직하는 신입, 중소기업은 허탈하다 [신입 구함, 경력 필수⑪]

경력 쌓으면 이직하는 신입, 중소기업은 허탈하다 [신입 구함, 경력 필수⑪]

승인 2026-07-08 06: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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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2026 대한민국 상생 채용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이 게시된 채용 공고를 보고 있다. 남동균 기자
지난 4월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2026 대한민국 상생 채용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이 게시된 채용 공고를 보고 있다. 남동균 기자
한 중소기업 관계자 A씨는 “요즘에는 첫 직장을 오래 다닐 곳이라기보다 경력을 쌓는 곳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입사 후 3년 이내에 회사를 떠나는 직원들이 3년차 이상인 직원의 이직보다 많아졌다. 퇴사를 결정하는 이유의 대다수가 연봉과 회사 이름값이었다. A씨는 “1~2년 정도 경력을 쌓은 뒤 조금이라도 규모가 크거나 처우가 나은 곳으로 옮기는 일이 반복된다”라며 “중소기업이라면 대부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 키운 직원이 ‘검증된 인재’를 원하는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일이 반복되며 중소기업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중소기업들 사이에서 인력 운영의 어려움은 물론, 신입사원을 교육하고 육성하는 선순환이 무너지고 있다는 호소가 나온다.

최근 대기업에 입사한 신입사원 중 경력 보유자의 비중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 가운데 121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5년 하반기 주요 대기업 대졸 신규채용 계획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대졸 신입사원 가운데 경력 보유자 비중은 28.1%로 전년(25.8%)보다 2.3%포인트 증가했다. 경력 기간은 1~2년이 46.5%로 가장 많았고, 6개월~1년(38.6%)이 뒤를 이었다. 올해 하반기 대졸 신규채용 계획에서도 경력직 채용 비중은 평균 26.9%에 달했다.

‘이제 좀 일을 맡길 만하다’ 싶을 때 회사를 떠나는 일이 반복되면서 중소기업의 허탈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신입사원 한 명을 실무자로 육성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지만, 성과를 내기 시작할 무렵 이직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교육 부담은 고스란히 기업 몫으로 남는다.

A씨는 “실무를 온전히 맡길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하는 데는 보통 3년 정도 걸린다”며 “이제 좀 써먹을 만하다 싶으면 퇴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면 다시 채용 공고를 내서 면접을 보고, 새 직원을 처음부터 교육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경력직을 채용한다 해도 곧바로 회사에 적응하는 건 아니다. “업무 환경과 시스템, 조직 문화가 회사마다 달라서, 경력 1~3년 차 경력 직원을 채용해도 결국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래픽. 한지영 디자이너
그래픽. 한지영 디자이너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평생직장에 대한 개념이 과거에 비해 희미해진 영향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첫 직장을 오래 다니기보다 경력을 쌓고 더 나은 조건의 회사로 옮기는 것이 하나의 경로처럼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한 중견기업 관계자 B씨는 장기근속에 대한 신입사원들의 인식이 과거보다 약해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예전에는 10명이 입사하면 3년 뒤 5명 정도는 남아 있었는데 지금은 3명 정도 남는 수준”이라며 “몇 년은 버텨야겠다는 생각보다 더 나은 기회가 생기면 옮기겠다는 분위기가 강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 업계처럼 높은 연봉을 받는 사례가 알려지면서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고 퇴사하는 직원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인재 유출의 끝은 청년 고용 위기
 
중소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인력이 더 나은 처우를 찾아 떠나는 구조가 반복되면서 신규 인력을 확보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인력 부족과 고령화가 동시에 심화되면서 사람을 채용하고 교육하는 여력도 약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3월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이 발표한 ‘중소기업 고용 동향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 규모와 성장잠재력 등을 고려했을 때 중소기업의 28.9%는 현재 인력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인력이 많다고 답한 비율은 3.2%에 그쳤다.

인력 구조의 고령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중소기업 근로자 가운데 50세 이상 비중은 48.6%로 대기업(26.4%)보다 22.2%포인트 높았으며, 최근 10년간 38.0%에서 48.6%로 꾸준히 상승했다. 여기에 중소기업의 44.4%가 올해 신규 채용 계획이 없거나 채용 규모를 축소할 계획이라고 답하는 등 청년 인력 유입 기반도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4월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2026 대한민국 상생 채용박람회’를 찾은 한 구직자가 취업용 증명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남동균 기자
지난 4월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2026 대한민국 상생 채용박람회’를 찾은 한 구직자가 취업용 증명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남동균 기자
중소기업들 사이에선 지금처럼 이직이 반복되면 기업에서 사람을 키우는 문화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A씨는 “계속 이직하는 일이 반복되자, 선임들 사이에서도 ‘어차피 나갈 사람인데 열심히 가르쳐서 뭐하냐’는 말이 나온다”며 “그 순간부터 교육의 질이 떨어지고 신입사원의 성장 속도도 느려지는 악순환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이어 “숙련 인력의 이탈은 단순히 빈자리가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교육 기능을 약화시키는 구조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검증된 인재를 원하는 기업은 늘어나고 있지만, 그 인재를 처음부터 길러낼 기업은 줄어드는 상황이다. 결국 노동시장 진입 기회는 좁아지고, 그 피해가 취업을 앞둔 청년들에게 돌아간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증된 인력을 채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될수록 누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청년을 교육하고 훈련시키겠냐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장기적으로 노동시장 진입 기회가 줄어들고, 청년 고용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같은 구조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를 더욱 확대하고 노동시장 양극화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중소기업은 인재를 육성하고 대기업은 그 성과를 가져가는 구조가 고착화되면 산업 생태계 전반의 균형도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14년 전 경고, 현실이 됐다

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예전보다 훨씬 심각한 고용절벽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2012년 5월 중소기업 근로자를 대기업에서 데려갈 경우 운동선수가 있던 팀에 이적료를 지불하듯 ‘능력개발기여분’을 중소기업에 상환하는 식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랬던 14년 전보다 지금의 청년 고용시장이 더 심각해졌다는 얘기다. 그는 “AI 확산으로 기업들이 청년 채용을 줄이는 추세지만,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대졸 신규 채용도 함께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금의 채용 시장은 14년 전 우려했던 그대로다. 중소기업이 인재를 육성하고 대기업이 이를 흡수하는 구조가 심각한 노동시장 과제가 될 것이란 지적이 이미 나왔지만 막지 못한 것이다.

2012년 11월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대·중소기업 공생발전을 위한 인력양성 협력 가이드라인 설명자료’에는 기술인력 채용에서 경력직 비중이 2009년 51.2%에서 2010년 54.5%로 높아졌다는 조사 결과가 담겼다. 당시 정부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직접 인력을 육성하기보다 중소기업에서 공들여 키운 인력을 경력직으로 채용하는 관행이 확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 4월 서울 서초구 aT 센터에서 열린 ‘2026 대한민국 상생 채용박람회’를 찾은 한 구직자가 채용 정보를 메모하고 있다. 남동균 기자
지난 4월 서울 서초구 aT 센터에서 열린 ‘2026 대한민국 상생 채용박람회’를 찾은 한 구직자가 채용 정보를 메모하고 있다. 남동균 기자
또 중소기업의 인력 양성 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 대기업의 경력직 채용이 확대되면 인재를 키운 중소기업의 부담만 커지고, 기업들이 교육훈련 투자를 기피하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같은 흐름이 계속될 경우 기업들이 인력 양성에 대한 투자를 기피하는 ‘저숙련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도 경고했지만, ‘인재 이력료’는 결국 제도화되지 못했다.

이 전 장관은 당시 가졌던 문제의식에 대해 “대기업이 교육훈련에는 투자하지 않고 중소기업에서 경험을 쌓고 실력을 갖춘 인력을 스카우트하는 관행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라며 “프로야구 선수들이 이적료를 받듯, 중소기업이 인력을 양성한 비용에 해당하는 부담은 대기업도 함께 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과거 경고하고 넘어갔던 문제는 노동시장 전반의 구조를 손봐야 하는 거대한 과제로 다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 인재 유출과 청년 고용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전문대학원 교수는 “강제적인 규제보다 공표와 인센티브를 결합해 기업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며 “중소기업 취업 청년 지원 정책을 확대하고, 사회적 공제 시스템을 통해 중소기업 청년 근로자의 복지를 보완해야 한다. 기업의 청년 신규 채용 기여도를 공표하고 이를 기업 지원 정책과 연계하는 유인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노동시장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를 완화하고 기업 간 위계 구조를 개선하는 등 산업 생태계 전반에 대한 구조적 접근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중소기업을 청년들이 근무하고 싶은 일자리로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백기홍 국회 예산정책처 인구전략분석과 분석관은 “중소기업의 임금, 복지, 직무성장, 조직문화, 경력개발 기회가 개선된다면, 청년들이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으로 이동하려고만 하기보다 그 안에서 계속 성장하는 선택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중소기업정책연구실장도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교육훈련 지원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소기업이 청년들에게 더 나은 성장 환경과 근무 여건을 제공해 자발적으로 오래 근무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예솔 김은빈 기자 ysolzz6@kukinews.com

[편집자주] 신입 지원자에게 경력을 요구하는 모순. 기획의 시작이었다. 기업은 신입 채용 공고에 ‘경력 우대’를 기본으로 적는다. 정부는 취업 준비 청년들에게 일경험을 권한다. 신입 면접장엔 인턴과 경력자가 가득하다. 무경력 청년들은 조용히 수백만 원을 들여 경력을 사거나, 시간을 경력으로 바꾼다.
경력이 기본 스펙이 된 시대. 궁금해졌다. 경력 없는 신입 지원자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경력을 쌓고 있나. 신입 사원을 교육하던 기업의 비용은 누구에게 전가됐나. 정부의 취업 정책은 어떻게 기능하고 있나. 쿠키뉴스가 채용 시장의 구조 변화를 추적했다. 13편에 걸쳐 보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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