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들은 경력 있는 신입을 선호하게 된 원인으로 신입 채용과 교육에 드는 비용과 시간에 대한 부담을 언급한다.
소프트웨어 중소기업 인사담당자 A씨는 “기업 입장에선 신입사원이 1인분을 하기까지 계속 손해인 상태”라며 “몇 년 정도 일해야 비로소 손익분기점이 오는데, 이직이 당연해지는 시점부터는 그때까지 재직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2월 발표한 ‘경력직 채용 증가와 청년 고용’ 보고서는 기업의 신입사원 채용에 대해 “충분한 생산성을 갖추기까지 교육·훈련에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장기 투자에 비유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최근 다수의 사람들이 평생직장을 추구하지 않게 되면서 이직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보고서는 “기업이 체감하는 근속 기간 대비 교육·훈련 비용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신입직에 투자할 유인이 줄어든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한 조직에 오래 근무하는 것보다 필요하면 이른 시기에 이직하는 문화가 보편화된 분위기다. 한국노동연구원·잡코리아 등이 2024~2025년 진행한 직장인 조사에서 30대 직장인의 이직 경험 비율은 67%로 나타났다. 잡코리아가 2024년 남녀 직장인 98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30.7%가 스스로를 ‘커리어 노마드족’이라고 생각했다.
커리어 노마드족은 스스로를 특정 직업과 회사에만 갇혀 있지 않고, 기회가 생겼을 때 직업이나 회사를 바꿀 수 있는 이들을 뜻한다. 20대 직장인의 33.3%가 스스로를 커리어 노마드족이라고 답해 비율이 가장 높았고 다음은 30대(30.3%), 40대(27.3%) 순으로 나타났다.

다른 업계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중견 보험대리점(GA) 관계자 B씨는 “예전에는 10명이 들어오면 3년 동안 5명이 남았는데, 지금은 3명 정도 남는다”며 “버티는 힘이 작아졌다”고 했다. 이어 “더 나은 기회가 생기면 회사를 떠나는 경우가 많아 교육에 투자한 시간과 비용을 회수하기가 쉽지 않다”며 “예전처럼 신입을 길게 키워 내부 인재로 만든다는 전제가 약해졌다”고 말했다.
백기홍 국회예산정책처 인구전략분석과 분석관은 “기업 입장에서는 사람을 뽑는 것이 단순한 채용이 아니라 탐색비용, 교육비용, 미스매치 위험을 수반하는 투자”라며 “경기 불확실성, 빠른 기술 변화, 노동시장의 경직성으로 잠재력 있는 신입보다 어느 정도 검증된 경력자를 선호하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채 줄고 수시채용 확산…신입 기피 가속화
기업들의 채용 방식도 바뀌고 있다. 정기 공채를 폐지하거나 줄이고 수시 채용을 늘리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 신입사원을 교육하는 공채의 자리에, 특정 직무에 가장 적합한 인력을 채용하는 수시 채용이 들어서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서 채용시장의 가장 큰 변화로 2023년과 2024년 모두 ‘경력직 선호도 강화’가 각각 53.4%, 56.8%로 1위를 차지했고, ‘수시 채용 증가’가 47.8%, 42.2%로 뒤를 이었다. 고용노동부의 2025년 조사에서도 향후 채용 방향에 대해 경력직 위주로 채용하겠다는 응답이 70.8%에 달한 반면, 신입직 위주 채용은 25.7%에 그쳤다. 채용 방식 역시 수시채용이 81.6%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고, 공채는 14.0%에 불과했다.

유재은 전 국무조정실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위원은 “기업 입장에서 사람을 뽑는 것은 단순한 채용이 아니라 탐색비용, 교육비용, 미스매치 위험을 수반하는 투자”라며 “경기 불확실성, 빠른 기술 변화, 노동시장의 경직성으로 잠재력 있는 신입보다는 어느 정도 검증된 경력자를 선호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업이 신입을 훈련해도 이직 가능성이 높거나 훈련 수익을 온전히 회수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강해지면 기업의 인적자본투자 유인이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의 확산으로 신입들이 경험을 쌓을 기회를 뺏기고 있는 점 역시 채용 방식의 변화의 원인 중 하나다.
과거 신입사원은 전화 응대와 자료 조사, 문서 정리, 보고서 작성 등 비교적 단순한 업무를 맡으며 조직에서 일하는 방식을 익혔다. 하지만 최근에는 단순 업무 상당 부분을 AI 도구와 기존 인력으로 처리할 수 있어 신입이 설 자리가 좁아진 분위기다.
박창현 하이서울기업협회 전무는 “예전에는 신입사원에게 기본 업무를 처음부터 다 가르쳐야 했지만, 지금은 대부분 AI가 대신하고 있다”며 “신입 세 명을 경력직 한 명과 AI로 대체하는 구조가 가능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AI는 채용 규모뿐 아니라 기업이 원하는 인재의 기준도 바꾸고 있다. 특히 IT·소프트웨어·마케팅·기획 등 AI 활용도가 높은 직무에서는 초급자가 하던 조사·정리·초안 작성 업무가 빠르게 자동화되고 있다. 신입을 처음부터 가르치기보다 AI를 활용해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준경력자를 뽑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 더 효율적인 선택이 된 것이다.
GA 관계자 D씨는 “AI 때문에 채용 자체도 줄었다”며 “과거 다섯 명이 맡던 일을 지금은 한두 명이 처리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말단 업무보다 팀을 책임지는 관리직을 찾는 경향이 생겼다”며 “신입을 채용하더라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시키려고 뽑는 것이기 때문에 기대치도 높아졌다”고 했다. 실제 이 회사는 정보보호 직무 신입을 채용할 때 6개월에서 1년 경력이 있는 지원자에게 가산점을 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력직을 선호하고 수시 채용으로 돌아선 기업의 태도를 급변하는 환경에서 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으로 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백기홍 분석관은 “기업의 경력 있는 신입 선호 현상은 자연스러운 채용 트렌드 변화”라며 “직무가 세분화되고 기술 변화가 빨라지면서 즉시 투입 가능한 인재를 찾는 흐름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유재은 전 위원은 “AI와 디지털 전환 등의 변화로 노동시장 유연성이 커졌고, 직무 전문성도 증대되었으며, 기업도 점점 더 효율성 극대화에 주목하고 있다”며 “노동시장이 변화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을 모색하는 것은 긍정적인 흐름”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청년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데 새로운 장벽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문제다. 노동시장에 처음 들어서는 청년들이 경험을 쌓을 첫 일자리부터 얻기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취업을 앞둔 청년들은 인턴과 부트캠프, 직무교육, 대외활동, 프로젝트 등 기업이 요구하는 경험을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신입 채용의 문은 좁아지고 신입에게 요구되는 직무 경험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은 ‘경력직 채용 증가와 청년 고용’ 보고서를 통해 “(경력직 채용 증가는) 노동시장에 갓 진입한 청년들의 고용 상황에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한 것으로 평가된다”라며 “기업이 경력직 채용을 늘리면 취업 경험이 없는 비경력자들의 취업 기회는 그만큼 낮아지는데, 이는 20대 청년층의 고용률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노동시장 진입을 앞둔 청년들이 첫 경력을 쌓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재은 전 위원은 “경력 없는 청년이 첫 경력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제도적 통로가 필요하다”라며 “경력이 스펙으로의 수단이 아니라 청년 개인의 진로를 고민하는 경험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백기홍 분석관도 “이 현상 자체를 해소해야 하는 문제로 보기보다는, 청년들이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첫 단계가 사리지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라며 “기업이 신입을 훈련할 유인을 갖도록 하고, 중소기업에서도 직무훈련과 경력 개발이 가능하도록 하여 경력 사다리로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수지 이예솔 김은빈 기자 sage@kukinews.com
[편집자주] 신입 지원자에게 경력을 요구하는 모순. 기획의 시작이었다. 기업은 신입 채용 공고에 ‘경력 우대’를 기본으로 적는다. 정부는 취업 준비 청년들에게 일경험을 권한다. 신입 면접장엔 인턴과 경력자가 가득하다. 무경력 청년들은 조용히 수백만 원을 들여 경력을 사거나, 시간을 경력으로 바꾼다.
경력이 기본 스펙이 된 시대. 궁금해졌다. 경력 없는 신입 지원자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경력을 쌓고 있나. 신입 사원을 교육하던 기업의 비용은 누구에게 전가됐나. 정부의 취업 정책은 어떻게 기능하고 있나. 쿠키뉴스가 채용 시장의 구조 변화를 추적했다. 13편에 걸쳐 보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