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전투표제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정치권 쟁점으로 떠올랐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선거관리 부실 논란 이후 야권 일각에서는 사전투표 폐지론에 힘을 싣고 있다. 반면 여권과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논란의 본질을 사전투표제 자체가 아니라 선거관리위원회의 관리 역량 문제로 봐야 한다고 반박한다.
쟁점은 단순히 사전투표를 유지할지 폐지할지에 그치지 않는다. 선거 불신을 줄이기 위해 제도를 축소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유권자의 투표 접근권을 보장하면서 관리 시스템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우선인지가 핵심이다.

2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최근 사전투표제를 폐지하고 본투표일을 이틀로 확대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행 사전투표제는 선거일 전 별도 기간에 전국 어디서나 투표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관외 사전투표의 경우 주소지 밖에서 투표한 유권자의 투표지가 회송·보관·개표되는 절차를 거친다.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은 이 과정에서 투표함 보관과 이송에 대한 불신이 반복돼 왔다며 사전투표제를 폐지하고 본투표 기간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폐지론의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 3일 치러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다. 당시 전국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유권자가 투표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는 일이 벌어졌다. 국민의힘은 이 같은 선거관리 부실이 제도 전반에 대한 신뢰를 흔들고 있다고 보고 있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은 선관위의 관리 시스템 부실이 선거제도 불신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사전투표제와 투표함 보관·이동 과정 등 현행 제도를 투명하고 철저하게 유지하는 것 자체가 선관위의 업무 역량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022년 대선 당시 코로나19 확진·격리자 사전투표 과정에서 이른바 ‘소쿠리 투표’ 논란이 불거진 점도 폐지론의 근거로 거론된다. 당시 일부 투표소에서 유권자가 투표지를 직접 투표함에 넣지 못하고 선거 사무원이 바구니나 쇼핑백 등에 투표지를 모아 옮기면서 직접·비밀투표 원칙 훼손 논란이 제기됐다.
여론조사에서도 사전투표제 폐지에 공감하는 응답이 유지 의견보다 높게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5~16일 전국 성인 10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17일 공표한 조사에서 사전투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52.7%,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44.2%였다.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반대 측은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사전투표가 아니라 본투표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들어 폐지론의 논리가 맞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선거관리 부실을 바로잡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이를 사전투표제 폐지로 연결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됐다는 주장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이번 논란의 원인이 사전투표제 자체에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선거 관리 과정에서 정작 사전투표 부정선거론자들이 얘기했던 것과 달리 오히려 문제는 본투표에서 발생했다”며 “부정선거론에 의해 사전투표를 없애자는 얘기가 나왔는데, 문제가 발생한 본투표를 두고 사전투표를 없애자는 결론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전투표가 특정 진영에 유리하거나 불리하다는 주장에도 반론이 나온다.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사전투표가 젊은 층 투표율을 높여 진보 진영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시각이 제기돼 왔다. 이 대표는 오히려 주소지와 실제 거주지가 다른 청년층에게 사전투표가 중요한 투표 수단이라고 봤다.
이 대표는 “사전투표에 참여하시는 분들 대부분은 유학이나 단기 근로 등 주소지와 거주지가 불일치하는 젊은 세대”라며 “최근 젊은 세대에서 범야권 지지가 높아지는데, 사전투표로 5~10% 정도의 투표율이 올라갔다고 할 때 그 투표율의 대부분은 젊은 세대”라고 말했다.
민주당과 진보당도 사전투표 폐지론을 비판하고 있다. 한병도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을 향해 “근거 없는 부정선거론이나 사전투표 폐지 같은 억지 주장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진보당은 사전투표제 폐지가 타지에서 공부하는 청년, 교대근무자, 서비스직 노동자 등 선거일 당일 투표가 어려운 유권자의 참정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사전투표제 폐지를 선거관리 부실의 해법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한다. 투표 편의를 높이고 유권자의 참여 기회를 넓혀온 제도를 축소하기보다, 불신이 발생하는 절차를 투명하게 관리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우진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사전투표제 폐지보다 선관위 운영 방식의 개혁이 먼저라고 봤다. 강 교수는 “지금은 국민 참정권 보장을 위해 선관위를 어떻게 시대에 맞게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며 “유권자의 투표권을 적극 보장하는 형태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제도를 축소하거나 제한하는 방식은 시대 역행적”이라고 말했다.
사전투표제의 효용과 별개로 관리 부담을 줄일 방안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사전투표 비중이 커질수록 인력·비용 부담이 늘고, 사전투표자와 선거일 투표자 사이의 정보 격차 문제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송진미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2024년 총선 이후 발간한 ‘사전투표제 현황과 효과: 편의성 증진과 투표율 제고를 중심으로’ 보고서에서 “사전투표제도가 전체투표율 상승에 미친 영향, 추가적인 비용과 인력 투입, 사전투표자와 선거일 투표자 간의 정보 격차 문제 등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장기적으로 사전투표제도의 신뢰도를 높이고 보다 효율적으로 선거를 관리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결국 핵심은 사전투표제의 존폐 여부만으로 좁혀지기 어렵다. 투표함 보관·이송 과정의 투명성 확보, 관외 사전투표 관리 강화, 투표용지 수급 매뉴얼 정비, 선거 당일 현장 대응 체계 개선 등 선거관리 전반의 신뢰 회복 방안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이미 커진 선거 불신을 고려하면 사전투표제 존폐 논의 자체를 피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사전투표가 부정선거론의 단골 소재로 거론돼 온 데다, 선관위 인력만으로 전국 사전투표소와 투표함 이동 과정을 빈틈없이 관리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사전투표제는 유권자의 편익을 위한 제도인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 부정선거론자들에게 계속 거론된다면 실익보다 사회적 비용이 더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본투표 기간을 이틀이나 사흘로 늘려 실시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제도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 상황에서는 신속성이나 투표율보다 사회적 갈등을 줄이는 쪽을 우선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했다.
김건주 기자 gun@kuk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