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6일 (5)
현금결제, 지켜야 할 사회 인프라 [권태준의 ‘경제법 이야기’]

현금결제, 지켜야 할 사회 인프라 [권태준의 ‘경제법 이야기’]

승인 2026-06-25 08:00:03 수정 2026-06-25 09:4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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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없는 일상이 보편화되고 있다. 수년 전 버스에서 현금 승차가 사라졌고, 식당과 카페에서도 현금을 받지 않는 매장이 늘고 있다. 택시에서 현금을 내는 것조차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다. 소비의 축이 신용카드, 계좌이체, 간편결제 등 비현금 수단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현금자동인출기(ATM) 설치 규모는 2013년 12만4000대 수준에서 2025년 10만대 미만으로 줄었다고 하니, 현금 수요 자체가 감소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이러한 탈(脫) 현금화 현상은 보관과 소지의 불편, 계산과 정산의 번거로움 등 현금이 갖는 불편함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보인다.

그러나 비현금 결제가 모두에게 편리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세대별, 계층별 현금결제 의존도 차이가 크다. 한국은행에 의하면 지난해 20대의 현금지출 비중은 14.7%에 그쳤지만, 70대는 32.4%에 달했다. 월 소득 9백만 원 이상 고소득층의 현금지출 비중은 15.1%인 데 반해, 1백만 원 미만 저소득층은 59.4%에 이른다고 한다.

지금의 노년층이 한창 경제활동을 하던 시기에 현금은 결제의 주류였다. 1997년에는 신용카드 사용자를 불리하게 대우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으로 여신전문금융업법이 개정될 정도로, 오히려 신용카드가 차별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불과 30년도 지나지 않아 정반대의 상황이 자리 잡았다. 이제는 거꾸로, 현금결제 환경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현금결제 환경의 보전은 단순히 노년층과 취약계층의 소외를 막기 위한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현금은 가장 원초적인 결제수단이다. 비상시에 현금보다 더 믿을 수 있는 결제수단은 없다. 기간통신망 장애가 반복될 때마다 많은 사람이 불편을 겪지만, 소비자와 공급자 양측 모두 현금결제 준비가 돼 있다면 그 불편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외국인 관광객의 현금결제 수요도 고려해야 한다. 지난해 이뤄진 한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의 현금결제 비중은 조사 대상 122개국 중 122위다. 비현금 결제 비중은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에 속한다. 뒤집어 보면, 외국인 관광객의 현금결제 수요는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외국인 관광객 2000만명 시대를 눈앞에 둔 지금, 정비가 필요한 사회 인프라는 숙박시설만이 아닌 것이다.

현금결제가 늘어나면 탈세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감안하면 이는 지나친 우려다. 대규모 자산 취득이 아닌 일반적인 소비에 대해서까지 현금결제를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다.

결국 문제는 속도다. 비현금화는 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이지만, 그 흐름을 시장에만 맡겨두면 현금이 필요한 이들의 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미 해외에서는 현금결제 거부를 제한하거나, 일정 비율 이상의 매장에 현금결제 의무를 부과하는 등 ‘현금 접근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우리도 우선 공공시설, 필수 서비스 업종을 중심으로 현금결제 의무를 단계적으로 늘려가고, 비상시를 위한 현금결제 매뉴얼을 마련하는 등 현실적인 보완책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현금결제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접근권이 보장돼야 하는 사회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권태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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