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파킨슨병 합병증으로 투병해온 그린스펀 전 의장은 22일(현지시간) 워싱턴DC의 자택에서 영면했다.
연준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의 별세 소식을 깊은 슬픔을 안고 접했다”며 “통화 정책과 경제 이론에 기여한 그의 업적은 연준은 물론 경제 전반과 미국 사회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겼다”고 밝혔다.
이어 연준은 고인에 대해 “상당한 경제 확장기뿐만 아니라 심각한 위기를 겪던 시기에도 연준을 이끌었다”며 “그의 재임 중 연준이 미국의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고 물가 안정의 시대를 달성했다”고 평가했다.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난 그린스펀 전 의장은 어려서부터 수학 신동 소리를 들었으며, 한때 줄리어드 음악원애 다녔을 정도로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 뉴욕대에서 경제학전공으로 학부부터 박사과정까지 마쳤고 30년 가까이 경제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다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연준 수장으로 발탁됐다.
이후 그는 2006년까지 1월까지 약 19년간 연준을 이끌어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1951∼1970년 재임)에 이어 역대 2번째로 긴 임기를 소화한 연준 의장으로 남았다.
로널드 레이건, 조지 H.W. 부시(아버지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정권 등 미국 4대 정권에 걸쳐 미국 중앙은행(연준)을 이끈 그린스펀 전 의장은 미국 현대 통화정책의 상징적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전성기는 1990년대 미국 장기 호황기였다. 미국 경제는 1991년 3월부터 2001년 3월까지 10년간 확장을 이어갔다. 고인은 당시 생산성 향상이 물가 상승 압력을 억제할 것이라고 판단했고, 예상보다 낮은 인플레이션 속에 미국 경제는 고성장과 낮은 실업률을 동시에 누렸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이 시기 ‘마에스트로’란 별명을 얻었다. 시장은 그의 의회 증언과 발언을 세밀하게 해석했고, 그는 모호하고 우회적인 표현으로 유명한 이른바 ‘연준식 화법’의 상징이 됐다.
그의 유가족으로는 유명 언론인인 부인 안드레아 미첼 여사가 있다.
정혜선 기자 firstwoo@kuk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