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다른 인가가 없는 한적한 산속으로 들어오니 남 눈치 볼 일 없어 마음이 홀가분하다. 주변이 온통 숲이라 밖에 나가면 아무데나 부담 없이 실례를 할 수도 있다. 마을 안에 살 때는 할 수 없었던 일이다.
하지만 마을 안에 집 지을 터가 전혀 없지는 않은데도 하나같이 마을 밖으로 나간다. 마을 안에 사는 것이 비단 외지인인 나에게만 불편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마을 안에 살면 사생활 보호가 잘 안 되고 번잡스러운 일들이 있기는 하다. 집에 담장이 없어 마당에만 나가도 내 행동거지가 마을 사람들에게 다 노출이 된다. 마당에 있을 때 집 옆으로 사람이라도 지나가면 수인사라도 해야 한다. 외출하려면 들고나는 마을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인사하느라 자동차 창문을 열고 운전해야 한다.
이장은 수시로 마을 방송을 통해 회관으로 모이라고 한다. 외지에 나간 식구들이 돌아오는 명절을 앞두고는 마을 대청소를 한다. 눈이 오면 마을 길에 쌓인 눈을 치워야 하고 때때로 마을 야유회며 면 체육대회에도 참가해야 한다.
동네 어른들이 마을을 돌며 실한 놈을 골라 회관으로 몰고 오면 젊은 사람들이 돼지를 잡는다. 나도 참여했다가 온몸에 돼지 피를 뒤집어쓴 일이 있었는데 그 느낌이 나쁘지는 않았다.
야유회 당일 아침 7시를 전후해 마을 앞에 관광버스가 도착한다. 차에 오르면 아주머니들이 재빠르게 우루사와 박카스를 돌리고 이어서 본격적으로 술잔이 돌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시작되는 춤판은 어스름한 저녁 돌아오는 시간까지 계속된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알딸딸한 상태로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종일 뽕짝 리듬에 맞춰 춤을 춘다. 거의 망아 상태로 한을 쏟아내듯 자신 안에 있는 에너지가 고갈될 때까지 쉬지 않고 춤을 춘다. 평소에는 시들시들하던 사람들도 이때만은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는지 땀이 흠씬 날 때까지 쉬지 않는다.
야유회 행사는 돌아온 다음 날 점심때 회관에 모여 남은 음식을 처리하고 결산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 일련의 과정은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진행된다.
버스 안에서 춤추는 것을 가지고 시골 사람들의 촌스럽고 퇴폐적인 향락 문화쯤으로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살아있는 돼지를 죽여 먹을거리를 장만하는 일이나 비록 버스 안이기는 하지만 나이 지긋하신 아주머니들이 웃음기 없는 얼굴로 눈을 지그시 감고 음악에 맞춰 이마에 땀이 배어 나올 때까지 춤추는 모습은 퇴폐, 향락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버스 안 안전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말이다.
오히려 중요한 농사일을 앞두고 겨우내 몸과 마음에 쌓였던 묵은 것들을 털어내고 새롭게 마음을 다짐하는 경건한 시간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까.
이렇게 지난 일들을 회상하다 보니 도시에 살 때는 겪어보지 못한 수많은 일이 생각 난다.
“.... 저녁을 드시고 한 분도 빠짐없이 회관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이장의 방송 소리가 귓가에 생생하다.
나는 그동안 마을 일에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견제하는 입장을 취했다. 견제라고 해 봐야 적극적으로 협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내가 나서서 세를 규합해 반대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딱 한 번 마을의 어떤 인사가 추진하던 일을 저지한 적이 있다.
이러한 나의 입장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눈엣가시처럼 불편했겠지만 어떤 사람들, 주로 발언권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안전판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지금도 간혹 마을 분들이 마을 일과 관련해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주로 이장에게 말해 봐야 별 소용이 없을 것 같은 경우다. 이런 경우에는 이장을 통하지 않고 내가 직접 시청이나 면사무소 등에 전화해 알아봐 주거나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해 뜨면 밭에 나가 일하고 해지면 집에 들어와 쉬듯이 사람 일에는 다 때가 따로 있는 것 같다. 10여 년간 마을 안에 살면서 이러저러한 일들을 겪다 보니 이제는 좀 홀가분해지고 싶다. 당분간은 집 주변에 텃밭이나 가꾸면서 지금 하고 있는 식품제조 회사 웰빙팜 일에 전념할 생각이다.
◇ 임송
중앙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니버시티 오프 펜실베니아 대학원에서 사회정책학을 공부했다. 1989~2008년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공직 생활을 했다. 부이사관으로 퇴직 후 일용직 목수를 거쳐 2010년 지리산(전북 남원시 아영면 갈계리)으로 귀농해 농사를 짓다가 최근 동네에 농산물 가공회사 '웰빙팜'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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