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8일 메리츠금융은 이사회를 열고 홈플러스 긴급 운영자금(DIP) 1000억원 지원을 최종 결정했다. 다만 자금은 MBK파트너스와 김병주 회장의 보증이 적법하고 유효하다는 점이 확인되는 대로 집행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메리츠는 회생계획안에 반영된 나머지 운영자금 역시 최대주주인 MBK가 책임 있는 방식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홈플러스 회생 과정에서 논란의 화살은 자연스럽게 MBK로 향하고 있다. 단순히 최대주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시장은 MBK를 단순한 재무적 투자자(FI)가 아니라 지난 10년간 홈플러스 경영권을 행사해 온 투자자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MBK는 2015년 홈플러스를 인수한 이후 최고경영자(CEO)를 선임하고 자산 매각과 투자, 사업 재편 등 주요 의사결정을 주도해 왔다. 일반적인 기관투자가처럼 지분만 보유한 것이 아니라 경영권을 행사해 온 만큼 기업이 위기에 처한 지금도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금융권 안팎의 시각이다.
시장에서는 MBK가 “투자 원금을 회수하지 않았다”는 주장과는 별개로, 홈플러스 인수 이후 수차례 대규모 배당이 이뤄졌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홈플러스는 인수 직후인 2016년과 2017년 각각 5035억원, 3672억원의 중간배당을 실시했고, 2019년 회계연도까지 지급한 배당 규모는 1조3000억원을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분 매각 여부와는 무관하게 이런 현금 흐름 역시 대주주의 책임 범위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메리츠는 지난주 입장문에서 MBK의 운용자산(AUM)이 약 330억달러(약 50조원)에 달하고 지난해 투자자들에게 17억달러(약 2조6000억원)를 분배한 점 등을 근거로 추가 자금 지원 여력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김병주 회장의 자산 규모까지 거론하며 “최대주주가 먼저 시장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자구 노력을 보여야 한다”고 공개 압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MBK는 홈플러스 투자에서는 보통주 2조5000억원이 전액 소각되는 만큼 가장 큰 손실을 부담하고 있으며, 투자금 역시 단 한 푼도 회수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보다 앞서 홈플러스는 메리츠금융에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각대금(1206억원)을 기초로 한 브릿지론 지원을 재차 요청하면서 김광일 공동대표(MBK 부회장) 개인의 이행보증을 카드로 제시했다.
그러나 메리츠 측은 “관리인 개인 보증만으로는 실질 지배주주의 책임 분담 장치가 부족하다”며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사모펀드 운용사인 MBK가 최종 의사결정 주체인 만큼 관리인 개인 보증만으로는 최대주주의 책임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것이 메리츠 입장이다.
전단채 피해자 비상대책위 역시 “보증과 대출은 책임 있는 자본 투입이 아니다”라며 MBK의 직접 출자와 자본성 자금 투입을 요구하고 있어, 대주주 책임론은 채권자·피해자 영역으로까지 확산하는 모양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메리츠의 행보 자체를 이례적으로 보고 있다. 통상 담보대출을 제공한 금융기관은 담보 가치와 회수 가능성을 기준으로 손실을 관리할 뿐 차주(채무자)나 최대주주의 정상화를 위해 추가 자금을 투입할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대출을 해준 금융회사가 차주나 에쿼티 투자자를 위해 추가적인 의무를 부담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며 “메리츠가 먼저 1000억원을 지원하면서도 MBK에 추가 자금 투입과 보증을 요구한 것은 채권자도 회생에 힘을 보탤 테니 최대주주 역시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메리츠가 김병주 회장의 보증까지 요구한 배경도 같은 맥락이다. 담보 자산의 회수 가능성이 결국 사업성에 달려 있는 만큼 최대주주의 정상화 의지와 책임을 함께 확인하려는 성격이 강하다는 해석이다.
또 다른 IB업계 관계자는 “핵심은 담보 자산의 회수 가능성”이라며 “추가 자금을 투입해도 회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야 채권자도 움직일 수 있다. 최대주주가 정상화를 자신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함께 지는 것이 시장의 일반적인 인식”이라고 말했다.

MBK의 주장에도 나름의 논리는 있다. PEF는 투자자(LP) 자금을 운용하는 구조인 만큼 투자 실패에 따른 손실은 원칙적으로 투자금 범위에서 끝나는 ‘유한책임’이 제도의 근간이다. MBK가 이미 투자금 2조5000억원을 모두 잃었다며 추가 책임론에 선을 긋는 것도 이러한 원칙에 기반한다.
해외에서도 PEF가 포트폴리오 기업이 위기에 처했다고 해서 추가 자금을 반드시 투입하는 것은 아니다. 회생 가능성과 투자금 회수 전망에 따라 신규 자본을 투입하는 사례도 있지만, 추가 출자 없이 손실을 확정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다만 시장은 이번 사안을 단순한 투자 실패로만 보지 않는다. 경영권을 행사하며 투자 성과를 추구했다면 위기 국면에서도 단순한 투자자가 아니라 책임 있는 대주주로서 일정 수준의 자구 노력을 보여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IB업계 관계자는 “유한책임은 PEF 제도의 근간이지만 경영권을 가진 최대주주라면 법적 책임과 별개로 시장 신뢰를 위한 책임경영도 요구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실제로 사업 경영을 한 주체로서 책임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메리츠와 MBK가 처음부터 대립 관계였던 건 아니다. 메리츠는 홈플러스 주요 담보대출을 제공하며 금융 파트너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회생절차가 시작되면서 양측의 이해관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채권자인 메리츠는 담보 회수와 회생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최대주주의 추가 부담을 요구하고 있고, MBK는 이미 투자금 전액 손실을 감수한 만큼 더 이상의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유한책임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맞서고 있다. 브릿지론과 DIP 금융 협상을 거치며 양측의 갈등은 공개적인 책임 공방으로 번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홈플러스 회생의 결말과 별개로 이번 사태는 법적 유한책임과 시장이 요구하는 책임경영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과제를 남겼다”며 “향후 국내 PEF가 기업을 인수하고 경영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도 책임경영 논의는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