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6일 (1)
“허구의 세상서 생의 의미 찾아”…46년 차 배우 최민식의 마이웨이 [쿠키인터뷰]

“허구의 세상서 생의 의미 찾아”…46년 차 배우 최민식의 마이웨이 [쿠키인터뷰]

넷플릭스 시리즈 ‘맨 끝줄 소년’ 주연 배우 최민식 인터뷰

승인 2026-07-04 06:00:05 수정 2026-07-04 20:48:35
Google에서 선호하는 출처로 추가 관심 있는 쿠키뉴스 기사를 Google 검색에서 더 쉽게 만나보세요.
최민식. 넷플릭스 제공
최민식. 넷플릭스 제공

46년 차 배우 최민식(64)의 ‘연기’는 ‘이기적인 작업’이다. “이 많은 허구의 세상 속에서 내 인생의 의미를 갖고자 이 일을 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때때로 냉혹한 평가를 감내해야 하는 직업이지만 연기를 이렇게 정의한 덕분에 아득히 뿌리 내린 고목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상 싫어하는 사람 어디 있냐. 그렇지만 연연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제 그럴 때도 아니다”라는 재치 있는 첨언을 잊지 않았다. 가볍게 던진 말 한마디에도 연륜이 뚝뚝 묻어났다.

2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에게선 넷플릭스 시리즈 ‘맨 끝줄 소년’의 허문오를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허문오는 20년 전 단 한 편의 소설을 발간한 이후 자신의 글을 쓰지 못한 국문학과 교수다. 단순한 인물은 아니지만 핵심 키워드를 뽑자면 ‘열패감’이다. 일생을 열등감에 사로잡힌 채 살던 그의 앞에 작문 실력이 뛰어난 공대생 이강(최현욱)이 나타나면서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다.

“허문오가 창작자로서 갖춰야 할 덕목을 도외시하고 출세에 집착하지 않았나, 저는 그것이 비극의 단초가 됐다고 보거든요. ‘쓰고 싶은 이야기가 없으면 쓰지 마라’, ‘문장 공부를 다시 해야겠다’ 같은 김수훈의 독설 자체가 트라우마가 된 거죠. 사실 모든 결과물에는 호불호가 있잖아요. 민감해질 수밖에 없지만 내면이 단단한 친구였다면 ‘별 미친놈 다 있네’ 하고 넘겼을 거예요. 그런데 그 말이 굉장히 오랜 시간 본인을 괴롭힌 거죠. 글에 대한 욕망은 정말 절절해요. 이강의 문학적 소양을 엿보고 바로 빠져들잖아요. 작가로서 근본적인 욕구와 겉으로 보이는 출세 욕구가 혼재된 사람이라고 봐야겠죠.”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연기자의 길을 걸어온 최민식과는 본질이 다른 캐릭터다. 그럼에도 최민식이 아닌 허문오는 이제 상상하기 어렵다. “열등감을 가져본 기억은 없어요. 다만 스스로 한계에 부딪혀서 괴로웠던 적은 수도 없이 많았죠, 연극 할 때부터 그랬으니까. 숙명 같아요. 나가떨어질 때도 많은데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함몰되면 그걸로 끝이죠. 그렇다고 그런 고통이 없으면 또 안돼요. 사실 인간이 추접스러워요. 제 가치관으로 허문오를 판단했을 때 말이 안 되는 지점이 한둘이 아니에요. 그런데 저는 연기해야 되잖아요. 이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해야 하거든요. 세상에 이해 못 할 일은 없어요. 물론 있겠지만…. 제가 낙천적이에요. ‘하면 되지’ 하는 거죠.”

평가에 민감하지 않다고 해서 대중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작품 합류까지도 많은 고민이 따랐다. 최민식은 특유의 농 섞인 어조로 털어놨다. “이런 얘기를 좋아할까 했죠. 미디어 환경도 달라지고 속도감 있는 전개가 트렌드잖아요. 의구심이 들었어요. 뭐 그러거나 말거나 ‘난 이렇게 간다’ 하면서 촬영했죠(웃음). 하지만 연극의 3대 요소 중 하나가 관객이에요. 평가에 자유로워야 하지만 점검은 해야죠. 의외로 많이들 작품의 주제의식에 공감해 주시더라고요. 비판도 해주셨고요. 시사하는 바를 두고 토론을 벌이시는 것도 봤어요. 진지하고 어둡지만 정육점에 고깃덩어리 걸어 놓듯 허문오라는 놈과 이강이라는 놈을 홀딱 벗겨놓고요. 굴절된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으면 했는데 그 의도가 어느 정도 전달된 것 같아서 좋아요.”

최민식. 넷플릭스 제공
최민식. 넷플릭스 제공

극중 가장 큰 반전은 이강의 작문 과제가 거짓임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어릴 적 보육원에서 만난 허문오가 무심코 뱉은 말에 이강이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받아 이 같은 일을 꾸몄다는 내용이다. 이강의 글에 놀아난 허문오는 교수직에 아내마저 잃는다. 허문오가 잘못에 비해 치른 대가가 너무 가혹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강과 유사한 일을 겪었던 최민식의 생각은 달랐다.

“구업이 우리가 표현하고 싶은 주제였어요. 항간에는 그런 얘기도 있는 것 같아요. ‘어릴 때 들었던 말을 어떻게 몇십 년 동안 기억하고 있다가 그 인간이 근무하는 대학에 입학해서 이런 일을 벌이냐. 너무 좀 비현실적이지 않아?’ 그런데 저는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폐결핵을 앓아서 죽을 뻔했어요. 저를 앞에 두고 의사가 가망이 없다고 했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당신이 의사냐’며 화를 내셨어요.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 있어요. 개연성을 지적하지만 저는 그럴 수 있다고 느꼈어요. 제가 이강처럼 모질지 못해서 간호사가 돼 의사를 찾아가진 않았지만요(웃음). 우리 어머니는 얼마나 가슴 아프셨겠어요. 자라면서도 두고두고 ‘그 사람은 참’,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렇게 최민식이 허문오를 온전히 이해한 끝에 시청자는 연기의 정수를 맛봤다. 그의 호연에는 이견이 없다. 물론 최민식은 정반대의 답을 내놨다. “제가 과대평가됐어요. 우스갯소리가 아니고, 저는 저한테 냉정해지려고 많이 노력해요. 외부의 기준에 저를 맞추기 시작하면 허문오처럼 되는 거예요. 연기파 배우로 인정받으면 너무 감사한 일이지만 허세를 덜어내려고 해요. 이 일은 대중을 위한 일인가, 결과론적으로는 그렇지만 이기적인 작업을 하려고 해요. 제일 행복하거든요. 우리 집사람이 ‘그럼 나는?’ 이래요. 맨날 혼나는 거죠. 다른 일을 해본 적이 없어요. 오로지 이 일만 하고 살아왔어요. 부부 관계로 치면 부부싸움은 많이 했죠. 나는 왜 이것밖에 이해를 못 하나, 갈등도 많이 있었고요. 그런데 이혼은 안 했던 것 같아요. 앞으로 하고 싶은 게 더 많아요. 여기저기 얘기 좀 해주세요(웃음).”

최민식은 여전히 연기가 즐겁다. 현장에서 가장 큰 어른이지만 스태프 한 사람 한 사람 살뜰히 챙기는 이유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렇게 고마운 일이 없어요. 한국 나이로 60대 중반인데 지금까지 좋아하는 일을 하잖아요. 예전에도 느꼈지만 요즘 더 절실하게 느끼는데요. 현장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제작진을 보면 정말 감동적이에요. 누가 등 떠밀어서 나온 사람이 없어요. 나와서 생고생하는데 그 모습을 보면 즐거워요. 이 친구들과 한 작품을 위해 움직일 때 내가 살아 있다는 게 느껴져요. 아무리 주 52시간, 12시간 촬영에 12시간 휴식 해도 힘든 건 똑같아요. 그렇지만 힘들다고 인상 쓰면 힘들지 않은 게 아니거든요. 가급적이면 힘든 건 힘든 거고 재밌게 작업하자, 그런 의미에서 내가 신이 나서 한 거죠.”

심언경 기자 notglasses@kukinews.com


심언경 기자 프로필 사진
심언경 기자
이 또한 지나가지만, 저 또한 기록합니다.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추천해요
    0
  • 슬퍼요
    슬퍼요
    0
  • 화나요
    화나요
    0

쿠키오리지널

전체보기

쿠키피드

전체보기

슥- 넘겨 보는 세상 이야기, 기자의 솔직한 코멘터리까지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