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8일 (4)
‘한 손엔 태극기, 한 손엔 선풍기’…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 14일째

‘한 손엔 태극기, 한 손엔 선풍기’…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 14일째

그늘 찾고 얼음물 나르고…시위 장기화 속 무더위와 사투
‘강성존·평화존’ 게이트별로 참가자 성향 분화

승인 2026-06-18 13:51:29 수정 2026-06-18 14:5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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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일대에서 ‘개표소 봉쇄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임은재 기자
1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일대에서 ‘개표소 봉쇄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임은재 기자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시작된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14일째 이어지고 있다. 참가자들은 한 손에 태극기, 다른 한 손에 휴대용 선풍기를 들고 ‘장기전’에 돌입하는 모양새다.

시위 2주째인 18일 오전 10시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1-3게이트 앞에서는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태극기를 든 참가자 약 300명은 애국가를 제창한 뒤 일제히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를 외쳤다.

참가자들이 하나둘 합류하면서 인파는 점차 불어났다. 서울시 실시간 도시데이터에 따르면 같은 시각 핸드볼경기장이 포함된 올림픽공원 일대 유동인구는 9000~9500명 수준이었다. 연령대별로는 60대 이상 비중이 25.8%로 가장 높았다.

1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일대에서 ‘개표소 봉쇄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임은재 기자
1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일대에서 ‘개표소 봉쇄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임은재 기자
장기화된 집회 현장에서 참가자들의 가장 큰 적은 폭염이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시위가 시작된 지난 4일 서울 최고기온은 28.4도였지만 이번 주 들어서는 33도를 웃도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참가자들은 각 게이트 처마 밑과 나무 그늘 아래에 돗자리와 간이 의자를 펼쳐 놓고 자리를 지켰다. 각 게이트 부스에 준비된 아이스박스의 얼음은 오전 11시가 되기 전 대부분 녹아버렸다. 오전 11시10분쯤 얼음물이 실린 트럭이 도착하자 자원봉사자들이 이를 각 부스로 나눠 옮겼다.

일부 참가자들은 아이스크림을 사 먹거나 부채와 휴대용 선풍기를 사용하며 더위를 식혔다. 오늘 처음 현장을 찾았다고 밝힌 이모(38세·여)씨는 “처음이라 무더위에 대한 대책 없이 나왔는데 이곳에 있는 자원봉사자들이 얼음물이나 쿨토시 등을 챙겨줘서 잘 버티고 있다”고 했다.

1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일대에서 ‘개표소 봉쇄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임은재 기자
1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일대에서 ‘개표소 봉쇄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임은재 기자
메인 집회 장소인 1-3게이트 인근에는 냉방 쉼터로 활용되는 관광버스 4대도 운영되고 있었다. 남녀 공간을 구분해 운영하는 쉼터 내부는 점심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더위를 피해 들어온 참가자들로 채워졌다. 관광 버스 인근에 있던 한 참가자는 “미국에 있는 한 목사가 후원해준 것”이라며 “더위를 식히거나 핸드폰을 충전하고 싶을 때, 또는 밤에 잘 때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이날 집회에는 가족 단위 참가자들도 눈에 띄었다. 한 부스에서는 생후 4개월 된 딸을 유모차에 태운 자원봉사자가 시원한 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한 참가자는 “갓난아기를 데리고 나온 엄마들도 많은데 이곳이 마치 폭도의 현장처럼만 비춰지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태극기를 꽂은 아기 유모차를 끌며 경기장 일대를 도는 부부도 눈에 띄었다.

1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일대에서 ‘개표소 봉쇄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임은재 기자
1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일대에서 ‘개표소 봉쇄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임은재 기자
시위대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강조하면서도 성향별로 분화하는 양상을 띄었다. 강한 정치 구호를 외치는 구역이 있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조용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곳도 있었다.

2-2게이트에서 만난 한 참가자는 “여기는 구호를 잘 외치지 않는 평화존”이라며 “게이트마다 분위기와 구호가 조금씩 다르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일부 참가자가 태극기를 흔들며 “부정선거 재선거” 구호를 외치자 다른 참가자가 “구호를 외치는 것도 자유지만 해당 구호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방해할 수도 있다. 강성쪽이면 다른 구역으로 이동해달라”고 요청하는 모습도 보였다.

1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일대에서 ‘개표소 봉쇄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임은재 기자
1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일대에서 ‘개표소 봉쇄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임은재 기자
이날 현장에서는 종교적 색채도 두드러졌다. 성경 구절이 적힌 팻말을 중심으로 둥글게 모인 청년 10여 명은 기타 반주에 맞춰 찬양을 부르며 기도회를 열었다. 통성기도가 시작되자 주변을 지나던 중장년층도 발걸음을 멈추고 합류했다.

반면 다른 구역에서는 참가자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경기장 주변을 돌며 “부정선거 재선거” 구호를 외쳤다. 학생들과 중년 여성 등으로 구성된 한 무리는 북을 두드리고 태극기를 흔들며 경기장을 한 바퀴 돈 뒤 다시 자리를 잡고 찬송가를 불렀다. 정치적 구호와 종교 활동이 뒤섞인 채 같은 공간 안에서 이어지는 모습이었다.

‘6·3 지방선거’가 치뤄진 지난 3일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를 비롯, 일부 지역에서 투표용지 부족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일부 시민들이 제2투표소 앞에 모여 2박3일간 집회를 열었다. 시위대는 지난 5일부터 개표소인 핸드볼경기장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재선거를 요구하며 핸드볼경기장의 출입구를 봉쇄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핸드볼경기장 내 사무실을 갖고 있는 체육단체와의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다. 시위대가 체육단체의 출입을 막으며 출근은 물론, 업무에 필요한 물품조차 반출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권혜진 기자 hjk@kukinews.com
유정민 인턴 기자 yu@kukinews.com
권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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