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호프’(감독 나홍진)는 믿음의 영화다. 극 중반까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괴물이 있다고 믿게 만들고, 후반에는 괴물인 줄 알았던 외계인들로부터 주인공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두고 관객의 믿음을 시험한다. 10년 전 ‘곡성’을 선보였던 나홍진 감독답다. 한 번만 보고선 모든 의도를 명확히 짚기 어렵지만 곳곳에 그 의미가 숨어 있다고, 또 믿게 되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사방이 지뢰밭인 비무장지대의 호포항, 그럼에도 아름답고 고요한 이곳에 사건이 발생하면서 시작된다. 길 한복판에서 발견된 소 사체는 어쩐지 찜찜하다. 무언가가 깊게 할퀴고 간 흔적에는 일찍이 파고든 파리들이 눈에 띈다. 범석(황정민)에게 이를 신고한 동네 청년들은 호랑이의 짓이라고 입을 모은다. ‘해술이 아저씨가 그랬으면 진짜’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아무리 봐도 호랑이가 범인이 아닌 듯하지만, 일단 범석은 경찰차로 돌아간다.
범석은 차를 모는 내내 결론적으로 무용한 무전을 친다. 그러다 작살난 호포부동산 건물을 마주한다. 급히 순경 성애(정호연)에게 무전을 넣고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한다. 날아다니면 안 될 자동차 같은 물건들이 계속 땅에 내리꽂히고 마을 사람들은 삽시간에 목숨을 잃는다. 1980년대로 추정되는 마을에서 지금 봐도 비현실적인 현상이 사정없이 펼쳐지니 이질적인 공포가 살갗에 스며든다. 또한 범석의 추적 루트는 그때 그 시절 구불구불한 어귀 길이나 정돈되지 않은 어시장인데, 원래 어수선한 공간들이 초토화된 광경은 괴물의 위력을 더욱 각인시킨다.
이 가운데 범석의 총부리는 매번 틀린 곳을 향한다. 다리 밑 낙연(이상희)을 저격하더니 결국 친구도 쏴버리고 만다. 이어 무장한 동네 노인들의 트럭을 얻어 탄 범석은 이 총이 다 어디서 났냐고 묻는다. 출처를 안다고 해서 상황이 바뀌지 않는데 그의 호기심은 앞으로 나아가질 못한다. 총알은 자꾸 표적을 빗나가고 그는 부지불식간 낙오된다. 노인들은 ‘얼빵하다’며 혀를 끌끌 찬다. 괴물의 이동 경로도 잘못 짚는다. 본인보다 앞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바로 뒤에 있어 죽을 고비를 겨우 넘긴다.

크리처는 약 50분 만에 모습을 드러낸다. 목소리로만 나왔던 성애도 이내 등장한다. 범석은 또 성애에게 “(괴물이) 몇 명을 죽였냐”는 무의미한 질문을 던진다. 이때 성애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답한다. 이러한 문답은 전개 내내 화자를 바꿔가면서 이뤄지고, 작품은 중요하지 않은 것을 소거하며 ‘중요한 것’을 향해 나아간다. 성애가 해술(임현식)의 진술을 받아 적을 때도 같은 방식이다. ‘진짜’만 말한다는 해술의 발언도 모든 내용이 중요하진 않다. 본질은 ‘괴물이 세 마리 더 있다’다. 그가 두루치기를 잘못 먹어 화장실이 급했던 것도, 죽을힘을 다해 오리걸음으로 자리를 옮긴 것도 허울일 뿐이다.
이야기의 구조도 그렇다. 표피를 걷어내고 또 걷어내면서 본질에 다가간다. 범석과 헤어진 후 곧장 숲으로 향한 성기(조인성) 일행은 호랑이도 괴물도 아닌, 외계인을 목도한다. 범석은 양배(음문석)가 모든 사달의 발단임을 알게 된다. 양배의 개입은 그간 관객의 믿음을 완전히 전복시킨다. 앞서 성애는 “선을 넘었다”, “아무리 괴물이라도 이러면 안 되는 거다. 죗값을 치를 거다”라며 격노했는데 먼저 선을 넘은 이는 단연코 양배다. 그러나 그는 웃으면서 범석의 화를 돋우는가 하면 자신이 빼앗긴 것에만 집중한다.
더 나아가 양배는 끝끝내 차체에 매달려 살아남은 성기를 ‘고양이가 튀어나왔다’는 이유로 핸들을 꺾어 튕겨낸다.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는 이의 질주이자 성기의 생존에 대한 믿음을 배신하는 대목이다. 이 시퀀스 전에도 나홍진 감독은 성기의 생사를 놓고 끊임없이 관객을 희롱한다. ‘이 정도면 진짜 죽었겠는데’ 싶어도 기인처럼 번번이 살아난 그가 황당하게 화면 밖으로 사라지니, 충격은 상당하다. 그리고 쿠키영상은 모든 관객이 진실이라 여겼던 것을 다시 한 번 뒤집는다.
외계인들의 대화에는 결말부에 다다르고 나서야 자막이 따라붙는다. 외계 황후 조르(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자신을 섬기는 전사 마베이요(마이클 패스벤더)에게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 하였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증거가 아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지구는 곧 멸망할 듯 보이고 이들도 본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만 같지만, 이 역시 단언할 수 없으며 사실 그럴 필요도 없다. 아직 보이지 않는 미래를 끝까지 붙드는 태도가 ‘믿음’이고, 이 믿음은 ‘희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목적지 없이 국도를 달리는 성애가 “절대 포기하면 안 돼요”라고 외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른 측면에서도 ‘호프’는 믿음의 영화다. 앞서 멀티플렉스 메가박스와 영화 배급사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를 보유한 메가박스중앙이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는데, ‘호프’의 공동제작·배급사가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는 ‘호프’의 흥행을 믿고 기다려야만 하는 처지다.
다행히 시네마틱 경험에 초점을 둔다면 ‘호프’의 흥행 가능성은 높게 점쳐진다. 바미기르(카메론 브리튼)가 마구 던져대는 사람과 사방에 튀는 사물 파편은 관객의 눈앞에 날아들고, 총격이 더해진 자동차 액션 시퀀스는 몰입도를 극대화한다. 조인성이 선보이는 고난도 승마 액션은 쾌감을 선사하고, CG(컴퓨터그래픽)에 의존하지 않은 총천연색 하늘과 고목으로 빽빽한 숲은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다만 일부 지점에서의 혹평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미 외신에서도 지적한 크리처 디자인과 VFX(시각효과)의 완성도가 아쉬움을 남긴다. 외계 종족의 외형은 영화 ‘아바타’의 나비족을 연상시키지만, 그에 비해 디테일은 엉성하다. 클로즈업된 바미기르의 눈물은 도리어 몰입을 깨뜨린다. 사운드도 과하다. 극 초반 스산한 바람 소리는 영화의 전체 무드를 구축하는 데 일조하지만, 이후 웅장한 사운드트랙과 압도적인 효과음이 몇몇 대사를 덮어 버려 집중을 해친다. 한국 영화임에도 자막이 필요하다는 인상이다.
1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56분, 쿠키영상 있음.
심언경 기자 notglasses@kuk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