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6일 (2)
AI 서버 전기 잡는 ‘작은 저장고’…삼성전기, ‘실리콘 캐패시터’ 키운다

AI 서버 전기 잡는 ‘작은 저장고’…삼성전기, ‘실리콘 캐패시터’ 키운다

실리콘 캐패시터 기술 설명회 개최…AI 반도체 전력 안정화 부품 주목
글로벌 대형 기업과 1.5조 공급 계약…2027년부터 2년간 공급
MLCC·패키지기판에 Si-Cap 더해 AI 부품 라인업 확대

승인 2026-06-14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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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기 실리콘캐패시터 개발 그룹장인 김원기 프로가 11일 실리콘 캐패시터 기술 설명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이혜민 기자
삼성전기 실리콘캐패시터 개발 그룹장인 김원기 프로가 11일 실리콘 캐패시터 기술 설명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이혜민 기자
“적층세라믹캐패시터(MLCC)와 경쟁하는 게 아닙니다. MLCC가 가지 못하는 곳을 실리콘 캐패시터가 채우는 겁니다.”

삼성전기 실리콘캐패시터 개발 그룹장인 김원기 프로가 11일 실리콘 캐패시터 기술 설명회를 열고 이같이 말했다. 지난달 글로벌 대형 기업과 약 1조5000억원 규모의 공급 계약을 체결한 뒤 처음 마련한 자리였다.

AI 반도체 경쟁이 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넘어 전력 안정화 부품으로 번지고 있다. 칩 성능이 높아질수록 전력 소모와 발열이 커지고, 순간적인 전압 변화에도 더 민감해지기 때문이다. 삼성전기는 실리콘 캐패시터를 앞세워 이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기의 실리콘 캐패시터. 삼성전기 제공
삼성전기의 실리콘 캐패시터. 삼성전기 제공

실리콘 캐패시터는 반도체에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부품이다. 전기를 일시 저장했다가 반도체가 필요로 할 때 공급하는 ‘댐‘ 역할을 한다. 동시에 미세한 전기 노이즈를 걸러내는 ’필터‘ 기능도 한다. AI 서버는 대기 상태에서 사용자 요청이 들어오는 순간 전력 소비가 급증하는 구조다. 전력 공급이 불안정하면 회로 오작동으로 이어진다.

김 그룹장은 설명회에서 캐패시터의 역할을 아파트 물탱크에 비유했다. 같은 시간대에 물 사용이 몰리면 수압이 떨어지듯, 데이터센터에서도 AI 연산이 몰리면 전력 공급이 흔들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더 많은 에너지를 더 좁은 공간에서 사용할 수밖에 없고, 캐패시터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기의 실리콘 캐패시터 목업. 삼성전기 제공
삼성전기의 실리콘 캐패시터 목업. 삼성전기 제공

실리콘 캐패시터는 실리콘 웨이퍼 표면에 미세한 구멍을 촘촘히 뚫고, 그 안에 전극과 절연층을 쌓아 전기를 저장한다. 삼성전기는 D램 제조에 쓰이던 적층 캐패시터(ISC) 공정을 응용했다. 김 그룹장은 “D램이 이미 30년 전부터 아주 좋은 캐패시터를 만들어 써왔다"며 ”트랜지스터 부분을 빼고 캐패시터 구조만 꺼내 고객 사양에 맞게 다시 개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MLCC와는 구조부터 다르다. MLCC는 세라믹 유전체와 전극을 수백 층으로 쌓아 용량을 확보한다. 대용량·고전압 환경에 강하지만 두께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 100마이크로미터 아래로 내려가면 특성이 급격히 나빠진다. 반면 실리콘 캐패시터는 현재 양산 기준 두께가 60마이크로미터 수준이다. 머리카락 굵기(약 70마이크로미터)보다 얇다. AI 서버 패키지 내부 공간이 점점 좁아지는 상황에서, 칩과 기판 사이 좁은 틈에 끼워 넣을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전기 특성도 차별화된다. 실리콘 캐패시터는 전기 흐름을 방해하는 잡음 성분인 ‘기생 인덕턴스(ESL)’가 MLCC보다 100배 이상 낮다. 고주파 노이즈를 빠르게 차단하고 전력 공급을 안정적으로 유지한다. 온도나 전압이 변해도 용량 변화가 적다. MLCC는 고온에서 유효 용량이 떨어지는 재료적 한계가 있지만, 실리콘 캐패시터는 250도 이상에서도 안정적으로 동작한다. 하루에도 극한의 냉열을 오가는 저궤도 위성, 전장, 항공우주 분야에서 수요가 늘고 있는 이유다.

두 제품은 경쟁 관계가 아니다. MLCC는 큰 용량과 고전압이 필요한 곳에 쓰인다. 실리콘 캐패시터는 얇은 두께와 빠른 반응이 요구되는 곳에 적합하다. AI 서버에서는 두 부품을 함께 탑재해 전력 안정성을 높이는 방식이 늘고 있다. 김 그룹장은 “MLCC가 필요한 곳이 있고, MLCC가 가지 못하는 곳을 실리콘 캐패시터의 개발로 새로운 길이 뚫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객 맞춤형 설계도 가능하다. 실리콘 캐패시터는 크기와 두께를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 반도체 기판 아래에 붙이거나, 패키지 내부에 넣거나, 기판 안에 내장하는 방식으로 적용할 수 있다. 김 그룹장은 “데이터센터나 AI 서버 쪽은 비중으로 보면 기판 안에 넣는 게 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삼성전기가 가장 강조한 것은 ‘토털 솔루션’ 역량이었다. MLCC·패키지기판(FC-BGA)·실리콘 캐패시터를 한꺼번에 공급할 수 있는 곳은 삼성전기뿐이라는 주장이다. 김 그룹장은 “패키지 솔루션, MLCC, 실리콘 캡을 같이 들고 고객사를 찾아간다”며 ”MLCC를 쓸지, 실리콘 캐패시터를 쓸지, 기판 밖에 붙일지 안에 넣을지 그 자리에서 함께 논의한다”고 말했다. 현재 신규 고객사 상당수가 패키지기판과 실리콘 캐패시터를 묶어 발주하고 있다고도 했다.

시장 전망도 밝다. 실리콘 캐패시터 시장은 2026년부터 2031년까지 연평균 18% 성장이 예상된다. iM증권은 삼성전기의 2027년과 2028년 실리콘 캐패시터 관련 영업이익이 각각 1000억~1500억원, 1800억~2500억원으로 전사 영업이익의 4~6%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적용처도 넓어질 전망이다. 현재 주 수요처는 AI 서버지만, 광통신 구간에서도 실리콘 캐패시터가 사실상 유일한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서버 랙 간 연결에는 고주파 신호 처리가 필요하다. 고주파 영역에서는 기존 MLCC가 특성을 내기 어려운 구간이 있어 실리콘 캐패시터 수요가 커질 수 있다. 향후 자율주행, 로봇, 항공우주 장비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이들 분야는 빠른 연산과 안정적인 전력 공급, 높은 신뢰성이 모두 필요하다.

김 그룹장은 피지컬 AI와 관련해 “AI 기반의 컨트롤이 일반화되면서 마찬가지로 굉장히 빠른 시간에 연산을 해야 되고 그러면서도 신뢰성을 확보해야 되니까 오히려 실리콘 케어를 많이 필요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업 성과도 나왔다. 삼성전기가 지난달 체결한 공급 계약 규모는 공시 기준 1조5570억원이다. 계약 기간은 2027년부터 2028년까지다. 삼성전기가 실리콘 캐패시터 사업에서 거둔 첫 대규모 성과다.

삼성전기는 이번 공급 계약을 발판으로 고용량·다기능 실리콘 캐패시터 제품군을 확대할 계획이다. 글로벌 고객사도 넓힌다. 기존 MLCC와 패키지기판 사업에서 쌓은 고객망을 활용해 AI 반도체 부품 공급망에서 입지를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이혜민 기자 hyem@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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