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아르 마네가 그린 카페 장면은 ‘카페 콩세르(Café Concert)’라 불리던 극장식 카페를 배경으로 한다. 이곳은 술을 곁들이며 공연을 즐길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18세기 중엽 파리에서 등장해 20세기 초까지 성황을 이루었다. 오늘날 샹송의 뿌리 역시 이 무대에서 자라났다.
예전에 유명 코미디언이 TV에서 ‘일단 한 번 와보라’고 광고를 하던 ‘물랭루즈’ 같은 대중적 카바레의 원형이다. 당시 파리에는 140여 개의 카페 콩세르가 활발히 운영되었다. 계급이나 신분을 초월해 누구나 음악과 술을 즐길 수 있었던 장소였기에, 마네 역시 그림의 소재로 자주 활용했다.
마네는 직접 대상을 관찰하며 근대적 삶의 단면을 화폭에 담았다. 인상주의 선구자로서 그는 자유로운 붓질로 순간의 빛과 공기를 포착했다. 파리 로쉐슈아르 대로에 위치했던 ‘브라세리 드 라이히쇼펜(Reichshoffen)‘이 배경이다.
브라세리(Brasserie)는 프랑스어로 ‘양조장(Brewery)‘을 뜻하며, 맥주와 함께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캐주얼하고 활기찬 분위기의 프랑스식 식당이다. 비스트로보다 규모가 크며, 보통 격식 없는 편안한 펍이나 카페 스타일이다.
친정아버지는 막걸리 양조장을 하셨다. 지금은 누구나 원하면 술을 빚을 수 있지만 예전에는 면마다 하나씩 허가제여서 독점이었다. 그래서 TV에서 양조장이 나오면 부모님 슬하에서 지내던 시절이 떠올라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된다.
밀가루 막걸리가 전부였던 그때와는 달리 잣, 옥수수, 밤, 고구마 맛이 나는 막걸리를 간혹 한 잔씩 마시면 시원하고 달콤하다. 나에게 막걸리는 추억이다. 그래서 마네의 술 그림이 각별하다.
어느 날, 마네는 맥주를 한방울도 흘리지 않고 능숙하게 서빙 하는 웨이트리스의 솜씨에 매료되었다. 그는 곧장 가장 잘하는 웨이트리스에게 작업실에서 모델을 서 달라고 부탁했다. 여종업원은 남자 친구와 함께한다는 조건으로 수락했는데, 파란 옷을 입고 파이프를 든 남성이 바로 그 보호자다.
왼쪽 무대에는 공연을 하는 무희의 팔이 잘려 있는데, <카페 콩세르의 한 구석>에서는 좀 더 많이 등장한다.
1878년 여름, 마네는 파리의 활기찬 밤을 화폭에 옮기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그는 〈라이히쇼펜의 카페 콘서트〉라는 대작을 시작했지만, 작업 과정에서 그림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각각 독립적인 작품으로 발전시켰다. 왼쪽은 〈카페에서〉로, 오른쪽은 〈카페 콘서트의 한 구석〉으로 완성되었다.
남자의 작업복 뒷면에 두드러진 세로선은 원래 캔버스의 가장자리이다. 마네는 웨이트리스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캔버스를 확장했으며, 묽은 물감을 사용했기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빨리 변색되었다.
<카페 콘서트의 한 구석>의 X선 사진에서 그림 왼쪽, 테이블 위의 물병 위쪽에 가로선 부분이 보이는데, X선 사진 속 창문의 연장선은 원래 구도의 흔적을 보여준다.
결국 〈카페에서〉는 초기 배경을 간직한 작품으로, 〈카페 콘서트의 한 구석〉는 무대와 무용수, 오케스트라가 더해져 한층 생동감 넘치는 장면으로 바뀌었다. 마네의 붓끝에서 카페의 소란스러운 공기와 음악, 그리고 근대적 도시의 리듬이 살아 숨 쉬게 되었다.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시선을 달리하여 카페의 혼잡함과 개인적인 고립을 동시에 보여준다. 또한, 긴 화폭을 사용하여 파리의 카페 분위기를 스냅샷처럼 담아냈다. 웨이트리스가 목이 마른 지 혹은 손님이 권했는지 한 손은 허리에 대고 맥주를 시원하게 마시고 있다. 맥주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도 시원하게 마시고 싶은 충동이 들게 한다.

이 작품은 원래 더 큰 그림의 일부였으나 마네가 잘라내어 별도의 작품으로 나눴다. 오른쪽 부분인 <카페 콘서트의 한 구석>는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왼쪽 부분인 <카페에서>는 스위스 빈터투어의 라인하르트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다
마네의 〈카페 콘서트〉 연작은 작품의 탄생 과정 자체도 흥미롭다. 일부 연구자들은 더 큰 〈라이히쇼펜의 카페 콘서트〉(1879, 월터스 미술관)가 잘려 나가면서 〈카페에서〉와 〈북스의 웨이트리스〉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두 그림의 높이가 같다는 점이 근거다.
그러나 또 다른 증거들은 있다. 〈카페 콘서트의 한 구석〉와 〈카페에서〉는 화풍이 정확히 일치하는 반면, 〈북스의 웨이트리스〉는 훨씬 자유로운 붓질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 작품의 테이블 가장자리가 맞물리고, 음료의 그림자가 서로 이어지는 듯 보인다. 이는 두 그림이 원래 하나였음을 암시한다.

결국 〈카페에서〉는 원래 구도의 배경을 간직한 작품으로, 〈카페 콘서트의 한 구석〉은 무대와 오케스트라가 더해졌고, 〈북스의 웨이트리스〉는 그 과정에서 독립적으로 발전한 습작일 수도, 혹은 반대로 다른 작품을 위한 습작일 수도 있다.
이처럼 작품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은 마네가 얼마나 실험적이고 유연한 방식으로 근대적 삶을 포착했는지를 보여준다. 몽마르트르 근처에 있던 카페 콩세르 중 하나가 폴리 베르제르였다.
코톨드 갤러리의 <폴리 베르제르 바>는 마네가 평생 시도해온 다양한 실험을 집대성한 작품으로, 일생을 마무리하는 결정판이다. 이 그림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일 년 전에 내놓은 거의 마지막 작품이다. 당시 마네는 아버지처럼 매독으로 인한 신경계 질환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기 어려웠고, 결국 다리를 절단한 패혈증으로 51세에 생을 마감했다.
이 작품에서 마네는 실제 술집 웨이트리스인 현실의 인물을 직접 무대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그는 파리의 밤문화와 그 속에 깃든 사회적 의미를 더욱 생생하게 드러내려 했다.
마네의 뒤로 깊숙이 펼쳐진 듯 보이는 술집 풍경은 사실 거울 속 반영이다. 처음엔 넓은 공간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녀의 손 뒤에 갈색의 나무 테두리가 보인다. 그것은 거울의 틀로 반사된 장면이다.
1882년 파리의 밤, 화려한 불빛이 번쩍이는 폴리 베르제르에 들어서면 사람들은 곡예사의 발끝을 올려다보고, 샴페인 잔을 부딪치며 웃음을 터뜨린다. 그러나 그 한가운데, 카운터 앞에 서 있는 쉬종(Suzon)은 다른 세계에 속한 듯 멍하니 서 있다. <계속>

홍석원 기자 001hong@kuk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