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에게 문경은 계절마다 다른 문장으로 말을 걸어오는 거대한 대하소설과 같습니다. ‘행복할지도’와 ‘사람향기’의 여정 속에서 제가 발견한 문경은 단순히 지리적인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문경은 일상에 지친 이들이 걸음을 멈추고 비로소 자신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내어주는, 자연이 쓴 가장 따뜻한 초대장이었습니다.
문경의 봄은 주흘산의 진달래보다 먼저, 돌리네 습지 입구에서 마주한 노란 복수초의 가녀린 외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행복할지도’ 촬영 중, 얼어붙은 대지와 하얀 눈을 뚫고 고개를 내민 그 작은 꽃망울을 보았을 때의 전율을 잊을수 없습니다. 사실 그 떨림은 꽤 오래전부터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오래도록 가슴에 품어온 문경 광부들의 삶을 소설로 탈고한 후, 작품의 얼굴인 제목을 두고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던 제 머릿속을 스친 단어가 바로 ‘복수초’였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막장 속에서 오직 가족이라는 빛을 향해 곡괭이를 휘둘렀던 광부들의 거친 숨결은, 차가운 눈을 뚫고 기어이 노란 꽃을 피워내는 복수초의 강인한 생명력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습니다. 저에게 복수초는 단순한 꽃이 아니라, 고난을 이겨낸 문경의 정신이자 제가 발견한 희망의 또 다른 이름 이었습니다.
이러한 문경의 강인한 서사는 계절마다 다른 문장으로 이어집니다. 복수초가 깨운 봄은 주흘산의 연분홍 빛깔로 흐르고, 여름이면 진남교반의 청량한 강물이, 가을이면 전통 가마의 불꽃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타오르는 빨갛게 물든 단풍잎이 새재의 산길을 화려하게 수놓습니다. 그리고 겨울이면 백자 달항아리를 닮은 순백의 정적이 온 산하를 감싸 안으며, 비로소 분주했던 마음을 내려 놓고 고요한 나를 마주하게 합니다.
이 찬란한 사계절의 기운과 광부들의 땀방울, 그리고 복수초의 생명력을 가장 뜨겁게 응축해 놓은 곳이 바로 거친 숨을 몰아쉬는 ‘망댕이가마’ 앞입니다. 제 가슴에 새겨진 장면이 있습니다. 방송 촬영 중 마주했던 어느 추운 겨울날, 망댕이 가마 앞에서 사투를 벌이던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입니다.
살을 에듯 차가운 바깥 공기와는 대조적으로, 가마 앞은 지옥 같은 열기로 가득했습니다. 대를 이어 가업을 지키는 두 장인은 붉은 불꽃이 넘실대는 아궁이 앞에서 서로의 호흡에 의지한 채 묵묵히 소나무 장작을 밀어 넣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뜨거운 열기가 빚어낸 땀방울이 비오듯 흘러내렸고, 그 땀방울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증발해 버리는 경이로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불의 빛깔을 읽는 법을 전하고, 아들은 아버지의 젖은 등 뒤에서 전통의 무게를 오롯이 견뎌내고 있었습니다. 그 치열한 모습은 마치 막장에서 금방 나온 광부의 얼굴처럼, 혹은 눈 속에서 피어난 복수초처럼, 고통 뒤에 찾아올 아름다움을 향한 숭고한 기다림이었습니다.
저는 그 뜨거운 불꽃과 장인들의 땀방울을 보며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손에 쥐는 찻사발 하나에는 문경의 흙과 물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밤잠을 설친 인고와 한 가문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1300도의 가혹한 열기를 견뎌내고 나온 찻사발은 그래서 차갑지 않습니다. 그 속에는 겨울을 녹이는 아버지와 아들의 뜨거운 사랑과 정직한 노동의 온기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국의 독자 여러분, 이번 문경찻사발축제는 저 전정희가 발견한 그 뜨거운 생명력과 가족의 사랑이 담긴 현장입니다. 망댕이가마의 불꽃이 빚어낸 찻사발을 손에 쥐고 그 온기를 느껴보십시오. 사는 게 참 무겁다고 느껴지는 어느날, 문경으로 오셔서 이 정직한 땀방울이 주는 위로를 직접 경험해 보시길 바랍니다.
흙이 불을 만나 불멸의 예술이 되듯, 문경에서의 시간은 여러분의 삶을 더욱 단단하고 향기롭게 빚어줄 것입니다. 찻사발 속에 담긴 문경의 진심과 장인의 혼이, 지금 당신의 마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026 문경찻사발축제]
기간 : 2026년 5월 1일(금) ~ 5월 10일(일)
장소 : 경북 문경새재 오픈세트장 일원
핵심 체험 : 대를 잇는 사기장의 찻사발 제작 시연, 전통 망댕이가마 불 지피기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