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을 하는 이에게 강화는 단순한 행정구역이 아니다. 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서사요, 발길 닿는 곳마다 역사적 행간이 숨 쉬는 ‘지붕없는 박물관’ 이다.
강화도는 단군 성조의 하늘이 열린 마니산 참성단부터,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맞서 39년간 대몽항쟁을 벌이며 문화를 지켜낸 고려궁지까지 우리 민족의 고비마다 방파제가 되어준 땅이다.
조선 시대는 외세의 침략을 온몸으로 막아낸 초지진과 덕진진, 광성보가 치열했던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이렇듯 무수한 상흔 속에서도 강화는 언제나 포용과 통합의 정신으로 다시 일어섰다.
이 장엄한 역사와 천혜의 자연이 어우러진 강화의 길 위에서, 오랫동안 묵묵히 자신만의 발자취를 새겨온 이가 있다. 바로 강화 출신의 행정가 이자 정치인인 박용철 전 강화군수다.
문학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그의 행보에는 언제나 ‘현장’과 ‘사람’이라는 뚜렷한 이정표가 있었다. 그는 강화읍에서 태어나 강화초등학교를 졸업한 이래, 평생을 강화의 공기를 마시며 자라난 ‘강화의 아들’이다. 강화의 들녘과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며 군민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시간이 어느덧 세 번의 봄여름가을겨울을 지나 네 번째 계절의 나이테를 굵게 새겼다. 자그마치 14년이 넘는 세월동안, 그는 강화 땅의 흙먼지를 온몸으로 맞으며 가장 아래에서부터 주민들의 삶을 길어 올린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가 걸어온 길은 화려한 수사보다는 묵직한 실천의 연속이었다. 3선 군의원 시절부터 축척된 지역에 대한 깊은 이해는 군정의 공백 속에서 치러진 보궐선거 당선 이후 빛을 발했다. 그는 별도의 업무 보고 없이도 군정을 신속하게 안정시키며, 준비된 리더의 역량을 증명해 보였다.
특히 박용철이 이끈 군정의 행간에서 가장 돋보이는 궤적은 자식을 품어 안는 아버지 처럼 강화 군민의 마음을 매만진 ‘소통의 깊이’에 있다. 그는 거창한 담론을 펴기보다 이른 새벽 눈을 비비며 밭으로 향하는 농부의 언어를 경청했고,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그물을 깁는 어민들의 거친 손을 먼저 맞잡았다.
주민 면담을 통해 군민들의 삶을 가장 가까이서 돌봤다. 이것은 숫자가 아니라 강화의 골목과 마을마다 새겨진 눈물겨운 발자취다. 민원이 있는 곳이라면 새벽이든 한밤중이든 주저 없이 달려가 군민의 응어리진 가슴을 다독이던 모습은, 마치 가정을 책임지는 든든한 가장이자 아버지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해묵은 지역 사회의 갈등을 봉합하고, 소외되는 이 하나 없이 7만 강화군민 모두가 하나의 울타리 안에서 상생할 수 있도록 화합의 토대를 닦은 것이다. 북한의 대남 소음 공격으로 밤잠을 설치던 접경지역 주민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아파하며 현장을 지켰고, “73년 만에 철책선 너머 평화를 품은 안보 접경지 마을 주민들의 일상적 고통을 해결하는 결단력을 보여준 것 역시 군민의 일상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아버지 같은 세심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가 다진 정책적 주춧돌 또한 확고하다. 영종~강화 연륙교 연결을 통한 첨단 경제자유구역구상, 계양~강화 고속도로 건설, 국립강화고려박물관 건립 추진 등은 강화의 역사문화적 자존심을 세우고 미래 100년의 대화소설을 완성하기 위한 거대한 필치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기술로서의 행정이 아니라, 주민의 삶 속에서 검증된 진심어린 예의와 실행력을 보여준 박용철의 발자취. 그가 군민과 함께 흘린 땀방울은 앞으로 ‘살고 싶은 강화’ ‘풍요로운 강화’라는 눈부신 대하소설로 이어지기를, 강화군 홍보대사이기에 앞서 한 사람의 문학인으로서 깊은 애정을 담아 기대해 본다.
[전정희 소설가 프로필]
학력 : 인하대학교 교육대학원 아동교육학 석사
저서 : 창작집 9편 대표작 <묵호댁>, <하얀민들레>, <두메꽃>, <가시나무꽃이 필 때>, <복수초>외 다수
전인수 기자 penjer@kuk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