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자 뒤에 숨은 서민들의 서사
창문을 열면 왈칵 밀려들던 묵호 바다의 짠 내음과 비탈진 논골담길의 흙먼지는 제 문학의 시작이자 전부였습니다. 저는 평생을 사람 냄새 나는 골목길을 헤매며, 평범한 일상 속 소중한 이야기들을 글로 받아 적고 이웃들의 눈물과 웃음을 세상에 전하는 소설가로 살아왔습니다. 제 소설집 <묵호댁>에 담긴 문장들 역시 화려한 수식어가 아니라, 거친 세파 속에서도 묵묵히 삶을 일궈온 우리 동해시민들의 서글프고도 억척스러운 숨소리 그 자체였습니다.
오늘, 동해시장 당선이라는 무겁고도 준엄한 직함을 안으신 시장님께 마음 깊이 축하의 인사를 건넵니다. 선거 기간 동안 수많은 유니폼을 적시며 서민들의 거친 손을 맞잡아주던 시장님의 온기 어린 행보를 생각해 봅니다. 고향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소설가로서, 그리고 동해시의 대외협력관으로서 시장님께 전하는 이 글은 딱딱한 행정 문서가 아닙니다. 시장님이 새로 써 내려갈 ‘동해’ 라는 거대한 장편소설의 첫 페이지에 바치는 가장 뜨거운 고백이자 준엄한 약속입니다.
작가는 문장과 문장 사이의 ‘행간’에 진심을 담고, 참된 지방자치는 시민들의 깊은 숨소리 속에서 진심을 읽어낸다고 믿습니다. 결재 서류의 활자 뒤에 숨은 진짜 동해시민들의 애환을 부디 읽어내 주시기를 바라며, 내가 온몸으로 겪어낸 동해의 사계를 시장님의 집무실 창가에 먼저 보냅니다.
동해의 사계 : 민초들의 삶을 닮은 시간의 무늬
봄, 망상초등학교 교정에 피어나던 하얀 민들레의 초심
가만히 눈을 감으면 기찻길 옆 흙먼지 날리던 그 옛날 동해 망상초등학교의 봄날 교정이 코앞에 와닿습니다. 철마다 시퍼런 파도 소리가 담장을 넘어오던 그곳에서, 우리는 봄이 오면 지천으로 피어나던 하얀 민들레를 보았습니다.
동해의 봄은 화려한 꽃잔치로 오지 않습니다. 겨울내 거친 바닷바람을 견뎌낸 검은 흙을 뚫고, 가장 낮은 곳에서 노랗고 하얀 고개를 내미는 들꽃들의 끈기로 시작됩니다.
시장님, 시장님께서 품은 정치의 초심은 바로 그 봄날의 민들레를 닮아 있어야 합니다. 선거를 치르며 “동해를 바꾸겠다”고 외치던 그 뜨거웠던 봄날의 약속들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자리가 높아질수록 서민들의 팍팍한 삶의 안쪽은 보이지 않기 마련입니다. 봄날의 따스한 햇볕이 응달진 골목 어귀까지 골고루 스며들 듯, 시장님의 시선이 가장 먼저 닿아야 할 곳은 화려한 시청 청사가 아니라,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을 일구는 농부의 얼굴과 이름 없는 민초들의 소박한 소망입니다.
여름, 묵호항 어판장의 비린내 속에 끓어오르는 치열한 생명력
여름의 동해는 사방이 살아 꿈틀거리는 눈부신 삶의 무대입니다. 새벽 4시, 묵호항 어판장은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았음에도 생선 비릿내로 가득 차 오릅니다. 거친 바다에서 막 돌아온 어선들이 토해내는 은빛 오징어와 생선들, 그리고 그것을 받아내는 억척스러운 우리 어머니들의 목소리에는 하루의 삶을 성실하게 열어가는 숭고한 열정이 배어있습니다.
뜨거운 햇볕 아래 달궈진 자갈밭처럼, 동해의 여름은 치열하고 끈질깁니다. 대외협력관으로서 제가 전국을 발로 뛰며 목격한 것은 서류상의 메마른 보고서가 아니라, 바로 이 여름 바다처럼 뜨겁게 살아 숨 쉬는 진짜 골목 안쪽 주민들의 가슴 뛰는 이야기였습니다.
행정은 바로 이 치열함에 답해야 합니다. 집무실 책상 위 서류들의 문장으로는 절대 어판장 바닥의 뜨거운 열기를 온전히 담아낼 수 없습니다. 시장님 임기 또한 이 여름의 바다처럼 뜨겁고 역동적이기를 바랍니다. 격식과 권위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현장 속으로 들어가 일하는 시장의 모습을 보아 주십시오. 묵호의 푸른 바다가 온갖 오물을 다 받아내면서도 스스로를 정화하듯, 수많은 갈등과 민원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소통의 바다를 이루는 넉넉함을 기대합니다.
가을, 두메꽃 피어나는 서민들의 골목길, 결실의 겸손함
바다를 피로하게 달구던 여름의 열기가 물러가면, 동해는 비로소 깊고 투명한 가을의 옷을 입습니다. 제가 오랜 시간 둥지를 틀고 생활하며 이웃들과 숨결을 나누었던 천곡동의 고즈넉한 골목이나 묵호항의 논골담길 어귀에는 이름없는 두메꽃들이 저마다의 빛깔로 피어납니다. 제 삶의 결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묵호동에서 바라보던 가을의 동해바다는 그 어느 때보다 깊고 푸르며, 투명하기 이를데 없었습니다. 마치 오랜 세월 소외당하면서도 묵묵히 참고 살아온 우리 강원도민들의 여리고 순수한 마음을 그대로 담아 안은 듯합니다. 가을은 거두어 들이는 계절이자, 동시에 스스로를 비워내는 계절입니다. 풍성한 수확의 기쁨 뒤에는 늘 소외된 이웃들의 쓸쓸한 그림자가 따라붙습니다.
시장님, 어제보다 조금 더 편안해진 출근길, 내 아이가 안심하고 뛰어놀 수 있도록, 시민의 소박한 일상이 한 편의 아름다운 작품이 되는 복지 동해를 만들어야 합니다. 깊어가는 가을 바다를 바라보며, 개인적인 치적이 아니라 오직 동해시의 백년대계만을 생각하는 겸손하고 깊이 있는 리더십을 가슴에 새겨주십시오.
겨울, 얼어붙은 풍랑을 견뎌내는 묵호댁들의 시린 동행
동해의 겨울은 모질고도 시립니다. 칼바람이 등 뒤를 때리고,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수많은 불빛을 켠 배들이 얼어붙은 파도를 가르며 나아갈 때, 포구의 저녁은 고독하기까지 합니다. 제 소설속 ‘묵호댁’은 그 시린 겨울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자식들을 키우고 마을을 지켜낸 우리의 어머니이자 고향 그 자체입니다. 귀농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나려는 젊은 부부를 위해 스스로 도둑 누명까지 쓰며 공동체를 지키려 했던 묵호댁의 눈물겨운 헌신은,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인간애’가 무엇인지를 가슴 깊이 일깨워줍니다.
겨울이 깊을수록 봄은 멀지 않으며, 가장 추운날 밤바다를 지키는 등불 하나가 온 마을을 따뜻하게 밝히는 법입니다. 소외당하고 눈물 흘리는 서민들의 곁에서 기꺼이 밤을 지새우는 따뜻한 시장, 얼어붙은 지역 경제의 풍랑을 온몸으로 막아서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십시오.
대외협력관으로서의 안타까움과 새로운 다짐
시장님 사실 제게 동해시는 단순한 임명장의 직함이 아닙니다. 제 어린 날의 순수한 꿈이 피어난 망상 석두골과 깊은 애정을 쏟으며 수많은 학생들에게 배움을 나누었던 천곡동과 부곡동의 추억이 살아 숨 쉬는 곳 입니다. 지금도 사랑하는 부모님께서 계신 산소가 있고, 내 소중한 형제들, 동무들과 제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들이 삶의 터전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는 소중한 곳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대외협력관이라는 소임을 처음 맡았을 때, 내 고향 동해를 위해서라면 전국 어디든 맨발로 뛰어가 내 모든 문학적 역량과 대외적 네트워크를 쏟아붓겠다는 책임감이 누구보다 뜨거웠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깝게도, 그동안 동해시의 행적적인 소통의 문은 단단히 닫혀 있었습니다. 대외협력관이라는 이름만 덩그러니 존재할 뿐, 정작 고향을 위해 발로 뛰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소통의 길목이 가로막혀 소임을 다하지 못했던 깊은 마음의 응어리와 안타까움이 제게는 가슴 시린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마음은 저 넒은 동해 바다를 향해 달려가고 싶었으나, 닫힌 행정의 벽 앞에 우두커니 멈춰 서야 했던 날들은 소설가인 저에게도 무척이나 혹독한 겨울이 었습니다.
이제 새로 부임하시는 시장님께 간곡하고도 준엄한 바람을 전합니다. 부디 전임자들의 우를 범하지 마시고, 시민들과의 소통의 문을 활짝 열어 주십시오. 시장실의 문턱을 헐어내고, 대외협력관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가장 외지고 소외된 골목길 서민들의 한숨 소리까지 가감 없이 경청해 주십시오.
처음 정치를 시작하며 품었던 그 준엄했던 초심, 동해의 푸르고 투명한 물빛을 닮은 시민들의 신뢰를 끝까지 기억해 주십시오. 소통의 문이 활짝 열릴 때, 저 역시 내 고향 동해의 백년대계와 고향 땅에서 자라날 아이들의 환한 미래를 위해 전국으로, 세게로 발로 뛰며 대외협력관으로서의 책임을 다할 것입니다. 시장님이 내딪는 발걸음마다 8만 6천 동해시민 모두의 꿈이 함께 빛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작가 프로필(소설가 전정희)
출생 및 고향 : 강원도 동해시 망상 출생, 어린시절 추억이 깃든 망상 석두골과 오랜 시간 생활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던 천곡동과 부곡동 연고, 부모님의 산소와 형제들의 터전이 있는 영원한 삶의 고향.
주요저서 : 중·단편소설 9편 대표작 ‘묵호댁’, 장편소설 하얀민들레, 두메꽃, 가시나무꽃이 필 때, 복수초 등 다수
대외 및 사회활동 : 현재 강원도 동해시 대외협력관, 전국 지자체(화천·영덕·강화·문경·인천) 홍보대사 및 명예홍보대사, 청년푸른아시아 홍보대사, 세이브더칠드런 세이브스클럽리더
방송활동 : KBS·MBN·채널A(교양·다큐·기행)
전인수 기자 penjer@kuk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