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의 대장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두고 외국인과 개인 투자자의 사상 유례없는 ‘동상이몽’이 벌어지고 있다. 외국인이 한 달 새 두 종목에서 23조원이 넘는 매물을 쏟아내며 증시를 압박하는 사이 개인은 이를 고스란히 받아내며 ‘반도체 부활’에 22조원 안팎을 베팅했다. 하지만 지난주 후반 날아든 구글의 ‘터보퀀트(TurboQuant)’ 이슈가 찬물을 끼얹으며 개미들의 투자심리는 안갯속에 갇힌 모습이다.
터보퀀트는 구글이 발표한 AI 추론 최적화 기술로 대규모 언어모델(LLM)이 대화를 처리할 때 사용하는 ‘키-값 캐시(KV Cache)’ 메모리 사용량을 최대 6배 줄이는 압축 알고리즘이다. 쉽게 말해 기존에 서버 6대가 나눠 맡던 연산을 이제는 서버 1대가 처리할 수 있게 만드는 셈이다.
30일 한국거래소(KRX)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3월 2일~30일) 외국인은 삼성전자에서만 16조2942억원을 순매도해 국내 증시에서 가장 많이 팔아치웠다. 같은 기간 개인 투자자는 15조2794억원을 순매수하며 외국인 매도 물량을 고스란히 받아냈다. SK하이닉스도 상황은 비슷하다. 외국인은 SK하이닉스를 7조2365억원 순매도한 반면 개인은 6조3323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지난 한 달 외국인 순매도 1·2위와 개인 순매수 1·2위에 나란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올랐다. 중동발 리스크와 환율 1500원 돌파에 따른 외국인의 기계적 이탈에 구글의 터보퀀트 발표까지 겹치면서 ‘공포’라는 추가 엔진이 달린 모습이다.
엇갈린 22조, 개미 vs 외국인…지정학·환율 리스크에 신기술까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구글발 터보퀀트 악재가 전해진 지난 26일부터 이날까지 사흘간 각각 6.82%, 12.72% 떨어졌다. 같은 기간 코스피 하락률(-6.59%)보다 큰 폭이다. AI 추론에 필요한 메모리(특히 KV 캐시) 사용량을 최대 6배 줄인다는 구글의 발표가 ‘HBM 수요 절벽’으로 해석된 탓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쇼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다는 의견에 무게를 싣는 모습이다. 우선 기술적 실효성 문제다. 터보퀀트는 이제 막 학계에 제출된 논문 단계의 결과물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실험실 수준의 소프트웨어 최적화 기술이 수조 원대 설비투자가 결정된 실제 서버 인프라에 즉각 적용되기까지는 수년의 검증 시차가 존재한다고 분석한다. 당장 내일 HBM 주문이 취소될 것이라는 공포는 시장의 과잉 반응일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이런 공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월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가 ‘저비용으로 챗GPT급 성능을 구현했다’고 발표했을 때도 비슷한 공포가 시장을 덮쳤다. 값비싼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수만 개씩 사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AI 인프라 투자와 엔비디아 칩 수요가 꺾일 수 있다”는 공포가 증폭됐고, 발표 직후 엔비디아 주가는 하루 만에 약 17% 급락, 시가총액은 800조원 안팎이 증발했다. 그러나 실제 GPU 수요 둔화가 확인되지 않으면서 ‘딥시크 쇼크’는 한 달여 만에 대부분의 낙폭을 되돌린 일시적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반도체 다이어트’의 역설…“비용 낮아지면 수요 폭발”
전문가들은 오히려 경제학적 관점의 ‘제번스의 역설(Jevons' Paradox)’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과거 동영상 압축 기술(MPEG)이 데이터 사용량을 줄일 것이라 예상했지만, 오히려 고화질 영상 시대를 열며 트래픽 폭발을 가져왔던 것과 같은 이치다. 효율화가 ‘메모리 덜 쓰는 기술’이 아니라 ‘더 많은 AI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단기 충격과 장기 수요는 정반대 방향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이를 ‘AI 대중화의 기폭제’로 정의했다. 김 본부장은 “터보퀀트로 AI 구동 비용이 낮아지면 그동안 비용 부담에 도입을 주저했던 온디바이스 AI(기존 클라우드에만 있던 생성형 AI가 휴대폰·PC·가전 같은 단말기 안에서도 가능해 지는 것) 등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결국 전체 메모리 시장의 파이는 더 커지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2026년 물량은 이미 완판된 상태이며, 수급 타이트는 2028년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도체주를 향한 매도 물량은 ‘정보의 비대칭’에서 비롯된 일시적 현상이라는 풀이도 힘을 얻는다. 김록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나스닥 하락 속에서도 미국 메모리 업체들이 반등한 것은 터보퀀트에 대한 우려가 단기간에 일정 부분 소화됐음을 시사한다”며 “수요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구글은 AI 효율화 기술을 공개한 뒤에도 2026년 설비투자(CAPEX) 전망치를 오히려 상향 조정하며 데이터센터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보다 장기적인 구조 변화에 주목했다. 그는 “터보퀀트뿐만 아니라 엔비디아 역시 KVTC라는 압축 기술을 활용해 KV 캐시의 오프로딩·온로딩 속도를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두 기술 모두 서버 DRAM과 eSSD의 2027~2029년 수요 전망에는 다소 부정적 요인”이라고 짚었다. 다만 “온로딩 후 압축을 해제하는 과정에서 GPU와 텐서처리장치(TPU), HBM의 추가 연산 활동이 필요하기 때문에 HBM4에서 기술 경쟁력을 확보한 삼성전자에는 HBM 시장 점유율을 확대할 기회 요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최근 주가 급락은 펀더멘털의 문제라기 보단 심리적 위축에 따른 결과에 가깝다는 평가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터보퀀트 이슈를 부정적으로만 해석하기보다 AI 서비스의 확산이라는 거대 담론 속에서 중립적인 시각으로 업황과 실적에 집중한 투자 전략이 필요한 시기”라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