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6일 (2)
대출 총량규제의 역설…은행 경쟁이 사라진다

대출 총량규제의 역설…은행 경쟁이 사라진다

가계부채 2000조 육박…당국, 총량규제 더 죈다
은행들 대출 ‘선제 축소’…예대금리차는 역대 최대
“총량규제에 경쟁 실종”…금리·상품 차별화 약화
“근본 해법은…장기 고정금리 모기지 확대 필요”

승인 2026-05-15 06:00:03 수정 2026-05-26 13:3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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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총량규제의 역설…은행 경쟁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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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방법 공공데이터, 통계자료, 법·제도 분석, 전문가 인터뷰
주제 가계부채 관리를 위한 총량규제가 은행 경쟁과 소비자 선택권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주의사항 총량규제의 효과와 부작용은 시장 상황과 은행별 대응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유의하세요.
관전포인트 가계부채 억제와 금융소비자 후생 사이의 어떤 균형점이 필요할지 고민하며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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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금융당국이 경제 최대 ‘뇌관’으로 꼽히는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대출 총량 규제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막대한 가계부채가 장기적으로 국내 경제 성장과 금융 안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금융권 안팎에서는 총량규제가 은행권 경쟁을 약화시키고 금융소비자의 선택권까지 제한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4일 한국은행의 ‘2025년 4분기 가계신용’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978조8000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14조원 증가했다. 가계신용은 가계가 은행·보험사·대부업체·공적 금융기관 등에서 받은 대출에 결제 전 카드 사용 금액(판매신용)까지 포함한 ‘포괄적 가계 부채(빚)’를 의미한다. 전체 잔액은 2000조원에 육박하지만 증가폭은 직전 분기 대비 다소 둔화했다.

한국은행은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거듭 경고하고 있다. 한은의 ‘가계신용 누증 리스크 분석 및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1960~2020년 한국을 포함한 39개국 패널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GDP 대비 가계신용 비율이 상승할 경우 시차를 두고 실질 GDP 성장률이 둔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침체 발생 가능성 역시 유의미하게 높아졌다. 특히 가계신용 비율이 GDP 대비 80%를 넘어서면 단기적으로도 성장률 하락과 경기침체 위험이 확대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금융당국은 잇단 경고 속에 가계부채 증가세를 억제하기 위해 대출 총량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5대 시중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 등의 올해 가계대출 총량 증가율 목표치를 지난해 1.7%보다 낮은 1.5% 수준으로 제시했다. 목표치를 넘긴 은행의 경우 초과분만큼 내년 대출 한도를 줄이는 ‘패널티’도 적용하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는 주택담보대출도 별도 관리 대상에 포함하고 월별·분기별 관리 체계도 도입했다. 신용대출을 줄이는 대신 주담대를 늘리는 방식의 ‘풍선효과’를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정부는 오는 2030년까지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80% 수준으로 낮춘다는 목표를 세웠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21년 98.7%에서 지난해 88.6%까지 하락했지만, 미국(68%), 일본(61.1%), 중국(59%) 등 주요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은행권도 이에 맞춰 선제적인 관리에 나선 모습이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의 올해 1분기 말 가계대출 실적은 연간 대출 증가 목표치(자체 경영계획 기준·정책성 대출 제외) 대비 -178.0%를 기록했다. 당초 9092억원 증가를 목표로 했지만 실제로는 1조6143억원 감소한 것이다. NH농협은행도 목표와 달리 가계대출이 1조3551억원 줄었고, 신한은행(-1조5896억원), 하나은행(-1조5402억원), 우리은행(-3447억원) 역시 모두 감소세를 나타냈다.

다만 금융권에서는 총량 규제가 시장 경쟁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지난해 말 기준 예금은행 전체 원화대출금의 약 65%를 차지하고 있다. 시장 지배력이 높은 상황에서 총량 규제까지 더해지면서 은행 간 금리·상품 경쟁이 약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예대금리차도 확대되는 모습이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의 지난 3월 정책서민금융 상품 제외 가계 예대금리차(대출금리-예금금리)는 평균 1.512%포인트(p)로 집계됐다. 전월(1.472%p)보다 0.04%p 확대된 수치로, 예대금리차 공시가 시작된 2022년 7월 이후 가장 큰 수준이다. 금융권에서는 가계대출 총량 관리가 강화되면서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금리를 낮춰 고객을 유치할 유인이 줄어든 영향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가계대출 총량 규제와 패널티 부담 때문에 대출금리를 함부로 낮추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타행 고객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것 자체가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가계부채 관리 기조가 강화되기 전에는 신규 가계대출 상품 출시가 활발했지만 최근에는 생산적 금융 기조에 맞춘 기업대출 중심 신상품이 많아졌다”며 “가계대출은 기존 상품만으로도 충분히 대응 가능하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총량 규제 단기적 수단…모기지 상품 확대해야”

전문가들은 총량 규제가 단기적 관리 수단일 뿐 근본 대책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거시경제 차원에서 가계부채를 조절할 필요성은 있다”면서도 “총량규제는 수요를 억제하기 위한 차선책일 뿐 장기적 해법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자금이 부동산으로 과도하게 쏠리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공급 확대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며 “금리 인상 카드도 고려할 수 있지만 현재 내수 상황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선택”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총량 규제가 장기간 지속되면 은행 간 경쟁 약화와 실수요자 피해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도 “이를 보완한다며 무분별하게 서민대출 공급을 확대하는 방식에는 반대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총량 규제가 폐지되더라도 은행권 경쟁이 곧바로 소비자 후생 확대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시각도 있다. 김득의 정의연대대표는 “현재처럼 대출 수요가 몰리는 시장 구조에서는 총량 규제가 없더라도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금리를 낮추거나 다양한 상품을 출시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라며 “가산금리와 마진 구조를 보다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과거 씨티은행과 SC제일은행 등 외국계 은행이 중금리대출 시장 공략에 나선 사례가 있지만, 이 역시 금융소비자 보호보다는 틈새시장 전략 성격이 강했다는 평가다.

궁극적으로는 금융시장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과거 금융위기 당시 주요국들은 가계부채를 줄여나갔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했다”라며 “미국은행은 이자수익과 투자수익이 각각 60%, 40% 수준인 반면 국내 은행들은 이자수익 비중이 94%에 달한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특히 모기지 상품 확대 필요성을 언급했다. 김 교수는 “미국에는 은행 외에도 다양한 모기지 상품 공급자가 존재해 소비자들이 은행 대출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며 “일반 서민들은 국책 모기지 업체인 ‘페니메이(Fannie Mae)’ 등을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단순히 은행 대출을 조이는 방식이 아니라 장기·고정금리 중심의 모기지 상품을 확대해 금융시장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태은 기자 taeeu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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